牛耳洞 이야기

우이동 소식 / 임보

洪 海 里 2007. 6. 9. 12:27

[문인이 띄우는 편지- 문학의집 서울]

 

우이동 소식    /   임보

―고불 이생진 선생님께

 

고불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면 금방 전화나 이메일을 의지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글월 드리게 된 것이 조금은 부자연스런 것도 같습니다.

70년대부터 우리는 우이동 골짝에 자리를 잡고 살아 왔지요.

선생님께서는 몇 차례 거처를 옮기시긴 했지만 우이동 인근을 크게 벗어나진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을 자주 뵙기 시작한 것은 86부터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이동 시인들>이라는 동인지를 만들 무렵부터지요.

이웃에 살고 있는 홍해리, 채희문 시인들과 사흘이 멀다고 어울려 술자리를 벌이곤 했는데,

선생님께선 약주를 즐기지 않으셨지만 술꾼들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늘 함께 하셨습니다.

내 생애에서의 가장 즐겁고 유익한 만남은 우이동 시인들과의 인연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이동 시인들> 네 사람은 1987년에서 1999년에 이르도록 사화집 25권을 엮어낸 다음,

보다 큰 모임인 <우이시회>로 발전적인 해체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비록 초라하기는 했지만 매달 『牛耳詩』를 엮어냈었지요.

그러다가 2007년에 이르러 사단법인화하면서 <우리시진흥회>로 명칭을 바꾸고 월간『우리시』를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고불 선생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오늘 새삼스럽게 거론한 것은 변모해 가는 우이동 시인들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우리의 초심이 혹 변해 가지나 않나 하고 염려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원래 <우이동 시인들>이란 우이동 골짝에서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지낸,

세상과의 교류에 능하지 못한 숙맥들이 동병상련의 정으로 만난 모임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제 법인을 만들어 일을 벌이고 있으니 선생님께서는 아마 못마땅하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아직 우리시회의 회원들 가운데는 세속적인 야망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체를 이용해 문단 활동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든지, 아류를 만들어 군림해 보겠다든지 하는 야욕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시겠지만 오늘의 현대시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가 아름다움과 감동성을 상실한 난삽한 글이 되어 가면서 독자들의 외면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지녔던 청렬한 시정신도 찾아보기 어렵고, 정련된 고급문학으로서의 시의 위의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현대시는 시와 시 아닌 글의 한계가 허물어진 가운데 혼란 속에 허덕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라는 장르의 글이 계속 이 지상에 남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시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면,

시인들이 크게 각성해야 되는 시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바람직한 시,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에 관하여 모색하는 작업이 이젠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개인도 개인이지만 문예지나 문학단체가 중심이 되어 주도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불 선생님, ‘우이시회’가 ‘우리시회’로 법인화한 것은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작업을 우선 우리라도 시도해 보고,

그러한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데 법인체의 자격을 갖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지난 5월 6일 ‘삼각산 시화제(詩花祭)’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해마다 ‘우이도원(牛耳桃源)’에서 우이동 시인들은 봄과 가을철에 자연과 시를 위한 제의를 천지신명께 올리고 있지요.

선생님께서 맨 처음 우이동의 한 골짝에 오래된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시고,

그 꽃의 황홀함에 반해 우이동 시인들이 매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가 아예 그곳에 복숭아꽃 동산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서 수십 그루의 복숭아나무를 옮겨다 심어 ‘우이도원’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그 복숭아나무들이 흐드러져 그야말로 도원을 이루는 별유천지가 되었지요.

그 복숭아꽃이 어우러져 삼각산 골짝을 환히 밝힌 것처럼 우리시회도 시로 세상을 환히 밝히는 모임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고불 선생님은 그동안 제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지니신 장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첫째는 근면하심입니다.

수많은 산천과 섬들을 섭렵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시집들을 엮어내셨습니까?

10년에 겨우 시집 한 권 만들어 내기 힘들었던 게으름뱅이 임보가 선생님을 만난 뒤부터는 일 년에 한 권 분량의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는 거의가 태작입니다만 부지런하신 선생님을 지켜보면서 과작의 인습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지요.

둘째는 겸손하심입니다.

젊은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도 언제나 깍듯이 대하시고, 남의 생각이나 말을 거역함이 없으십니다.

저는 술 한잔 들어가면 말도 함부로 하고 남에 앞서 내 생각을 드러내고자 안달이니 선생님의 경지에 이르기는 그야말로 백년하청일 것만 같습니다.

셋째는 한결같음이지요.

선생님은 처음 만났던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세상이 이(利)를 좇아서 조변석개하는 풍조인데 선생님이야말로 초지일관하신 의연한 선비이십니다.

 

지금 8순을 바라다보는 연세인데도 여전히 아름다운 섬들을 찾아다니시고,

몇 군데의 정기적인 시낭송회를 꾸준히 가지시며, 열심히 작품 활동하신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도 선생님의 연치에 이르도록 그렇게 건강할 수 있을까 부럽기만 합니다.

수년 전 거문도에 따라가서 며칠 함께 지냈던 때가 꿈결처럼 떠오릅니다.

이번여름에도 어느 한적한 섬에 들러 며칠 뒹굴며 선생님께 푸념이라도 좀 늘어놓다 오고 싶군요.

부디 더욱 강건하시고 좋은 글 더 많이 쓰시길 기원합니다.

 

  (문학의 집,서울 200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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