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변잡기·洪錫珉 기자

<酒변잡기> 맥주와 요리가 만났을 때

洪 海 里 2007. 9. 18. 12:58
맥주와 요리가 만났을 때


《한국에서 맥주는 좀 억울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술이지만 이 땅에선 왠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식전에 목을 축이기 위해 한 잔, 또는 술이 얼큰해진 후 입가심으로 한잔 할 때 찾는다.

부담 없는 회식 자리에선 소주, 격식을 갖춘 자리에선 와인이 나온다. 맥주는 심지어 폭탄주의 장약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잘 차려진 코스 요리에 맞춰 순서에 따라 다른 종류의 맥주를 내놓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맥주만 즐기는 술자리는 드물다.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떠올려 봐야 노가리나 오징어, 골뱅이 정도다. 하지만 술 마시는 데 어디 정해진 원칙이 있나. 더욱이 요리에 따라 맥주가 혀의 감각을 더 살려주거나 음식 맛과 어울려 환상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수백, 수천 종의 맥주 리스트를 갖춘 맥주 전문 레스토랑이 조만간 등장할지도 모른다.》

▼맥주와 어울리는 요리 4選▼

굴요리와 스타우트, 포터

굴이나 홍합, 조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맥주는 포터나 스타우트처럼 색이 짙고 텁텁한 느낌을 주는 맥주다. 특히 굴과 맥주의 조합은 19세기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 나올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지금이야 굴의 몸값이 상당히 올라갔지만 당시만 해도 펍에서 공짜로 굴을 내놓을 정도로 흔했다.

현재 생산되는 일부 스타우트에는 굴 농축액 성분이 포함돼 있기도 하고 마스톤 같은 회사에선 아예 ‘오이스터 스타우트’라고 이름 붙인 맥주를 내놓았다. 심지어 맥주잔에 생굴을 넣어서 마시기도 한다. 약간 짠 맛과 비린내가 섞인 그 느낌!

굴에 어울리는 술로 샴페인을 꼽는 이도 많다. ‘검은 벨벳’이라는 칵테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우트 맥주인 기네스 엑스트라 스타우트와 아주 드라이한 샴페인을 절반씩 섞어 만든 것. 굴에 어울린다는 두 가지 종류의 술을 섞은 칵테일이다.

생선 요리와 필스너

생선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꼽으라면 단연 샤도네이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맥주 역시 샤도네이 화이트처럼 드라이하면서 깔끔해야 한다.

체코가 원산인 필스너는 깔끔하고 신선한 맛에 약간의 꽃향기가 남아 있어 생선 요리가 가진 풍미를 간섭하지 않고 잘 살려준다. 필스너는 이제 보통명사처럼 쓰이지만 고향인 체코에선 여전히 필센 지방에서 만든 맥주에만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본고장에선 호수에서 잡힌 잉어 요리를 함께 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송어나 대구, 가자미 같은 다른 생선도 상관없다.

샐러드와 브라운 에일

에일하면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흔히 보는 맥주와 달리 진하면서 깊이가 있는 맛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에일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킨 것. 에일은 맥주를 분류할 때 라거와 함께 최상위 카테고리를 이루는 두 축 가운데 하나다. 워낙 종류가 많고 따라서 맛의 스펙트럼도 넓다. 브라운 에일은 실제 향이나 맛만 놓고 보면 오히려 여성적이다. 호두 같은 견과류 향이 강하고 심지어 꽃향기까지 난다. 이 맥주는 그래서 야채샐러드와 잘 어울린다. 샐러드와 마실 때는 단 맛이 나는 쪽보다는 다소 드라이한 스타일의 브라운 에일이 더 낫다. 영국의 뉴캐슬 브라운 에일은 영국의 펍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에일 맥주로 한국에도 들어와 있다.

소시지와 다크 라거

소시지 요리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은 독일이 원조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세계 어느 맥줏집에 가도 소시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맥주 안주로 돼지 허벅지살로 만든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에 겨자를 얹은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에 양배추를 잘게 썰어 만든 독일의 ‘김치’ 사우어크라우트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소시지에는 많은 맥주가 잘 어울리지만 전문가들은 특히 뮌헨 스타일의 다크 라거를 추천한다. 하이네켄 다크처럼 고소한 맥아 향과 약간 탄 듯한 맛이 살아있어야 훈제 소시지나 햄과 잘 맞는다.

(도움말=마이클 잭슨의 ‘얼티밋 비어’, 잠실롯데호텔 이석현 지배인)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맥주 종류 뭐가 있나

정확히 추산할 길은 없지만 세계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는 와인만큼이나 다양하다. 맥주는 만드는 공법에 따라 크게 에일과 라거로 나눌 수 있다.

○ 에일

일반적으로 텁텁하고 구수한 느낌을 준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거품과 함께 위로 떠오르는 성질을 가진 효모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면발효 맥주라고 부른다. 라거보다 더 높은 온도(18∼25도)에서 짧은 기간에 발효가 되고 이후 15도에서 1주일 정도 숙성 기간을 갖는다. 라거 맥주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높고 색이 진한 경우가 많다. 에일에 쓰이는 효모는 에스터로 불리는 부산물이 생기는데 꽃이나 과일의 향이 난다. 주요 산지는 영국과 독일 북부, 미국 일부 지역. 에일은 색깔에 따라 앰버, 레드, 페일, 다크, 브라운, 골든 에일 등으로 다시 나뉜다. 영국의 포터나 스타우트, 독일의 알트비어나 고제, 쾰슈, 바이젠 등도 에일 계열이다.

○ 라거

독일어로 ‘저장하다’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산뜻하고 깔끔해 세계적으로 에일보다 라거 계열이 우세하다. 국내 생산 맥주나 하이네켄, 밀러 등 이름이 잘 알려진 맥주는 대부분 라거라고 보면 된다. 발효가 끝나면서 가라앉는 효모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하면발효 맥주로 불린다.

라거 맥주는 7∼15도의 저온에서 7∼12일간 발효 후 다시 0도 정도에서 1∼2개월간 숙성을 거친다. 에일과 달리 부산물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깨끗한 느낌을 주고 호프의 쓴 맛도 강하다. 독일 지방의 라거 맥주에는 복, 도르트문터, 라거 둥켈, 옥토버페스트, 라우흐비어, 슈바르츠비어, 비엔나 라거 등이 있다. 복 맥주는 색과 향이 짙고 약간 단 맛이 난다. 도르트문터는 향과 맛이 산뜻하며 쓴 맛이 적다. 필스너도 라거 계열인데 황금색을 띠고 맥아 향이 강하며 맛이 담백하다. 타헨 지방의 다크 라거처럼 맥아 향기가 짙게 나는 흑맥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