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님의 가을시편과 배초향

洪 海 里 2007. 10. 7. 16:44

 

어제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아 산방산 등산이 신이 났다.

알맞게 불어주는 바람에 땀을 씻으며 정상 선인탑에 올랐을 때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그 위로 둥둥 떠 있는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저녁엔 납읍리에 동창 아들 결혼식에 갔더니

이번에 올라오는 제15호 태풍 ‘크로사’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번에 바람만 세어도 이제야 파릇파릇해진 채소를 싹쓸이해버릴 거라고.

제발 무사히 지나가길 빌며, 감칠맛 나는 홍해리 선생님의 시를 뽑아 올린다.


배초향(排草香)은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방애잎, 중개풀, 방아풀이라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

양지쪽 자갈밭을 좋아하고 줄기는 곧게 서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져 네모진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인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입술 모양으로 7∼9월에 피고 자줏빛이 돌며

윤산꽃차례[輪傘花序]에 달리고 향기가 있다.

열매는 분열과로서 납작하고 달걀 모양의 타원형인데,

어린순을 나물로 하고 관상용으로 가꾸기도 한다.

 

 

♣ 가을 - 홍해리(洪海里)

   

만났던 이들을

모두 버리고

이제 비인 손으로

돌아와

푸른 하늘을 보네

맑아진 이마

오랜만에

만나는

그대의 살빛

無明인

내가

나와 만나

싸운다

 

 

♣ 가을 단상 - 홍해리(洪海里)

   

한때는

오로지 올라가기 위해

올라서기 위하여

올라갔었지마는

이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내려가는 일

아름답게 내려가는 일


산천초목마다

저렇듯 마지막 단장을 하고

황홀하게 불을 밝히니

하늘이 더 높고 화안하다

들녘의 계절도

무거운 고개를 대지의 가슴에 묻고

깊은 사색에 젖어

이제 우리 모두 우주의 잠에 들 때


맑게 울려오는 가락

천지 가득 퍼지고

잔잔히 번지는 저녁놀

들판의 허수아비를 감싸안는다


산자락 무덤가의 구절초도

시드는 향기로 한 해를 마감하고

그리고

과일이 달려 있던 자리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니,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 위하여

아름답게 내려가기 위하여

깊이 깊이 껴안기 위하여

오르는 것뿐.

 

 

♣ 가을 연가 - 홍해리(洪海里)

   

이런

저녁녘에 홀로 서서

그대여

내 그대에게서

숨 막히게 끝없는 바다를 보노니,


그 바다를 가로지르는

맑은 바람 속에서

물소리에 씻겨

막막하던 푸르름

애타던 일

모두 잔잔해지고,


맑은 넋의 살 속

흘러가는 세월의 기슭에

그리움이란 말 한 마디

새기고 새기노니,


기다린다는

쓸쓸함이란 아픔도

화려하기만 한

이런 가을 저녁에

그대여.

 

 

♣ 가을빛 - 홍해리(洪海里)

   

새벽녘 빗소리에 잠이 깨이다

비온 다음

투욱 툭

튀어나오는 가을빛

맑은 살의 깊은 잠을 위하여

햇살은 부숴지고 있느니

이 따스함이여

솔잎 사이

부드러운 바람은 영글어

혼자서 생각으로 일어서고 있느니

반야여

별빛도 익어

뚜욱 뚝 떨어지는 가을밤

은빛 이마에 빛나는

수수밭 위의 기러기 울음

한 점

두 점

깊어가는 작별인사.


 

♣ 가을이 오면 - 홍해리(洪海里)

   

가을이 오면

먼저 떠나간 시인들의 눈빛이

비취로 풀려 하늘에 찬다

하늘 가득 보석으로 반짝이다

지상으로 지상으로 내린다

그들이 남겨놓은 노래들이

노을처럼 그리움처럼

밤새도록 적막강산을 가득 채우고

사람들은 저녁이 와도

등불을 밝히지 못한다


가을이 오면

허공중에 떠돌던

마른 뼈다귀 같은 비애를 안고

가을걷이 끝난 들판으로 가라

한 줄의 시를 찾아

허수아비 목쉰 노래를 따라가면

저 높고 푸른 하늘밑

누구도 채우지 못하는 공간을

맑은 영혼의 가락으로

저들 노래들이 와 선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 나비를 잡아 보셔요! 洪海里의 홈페이지로 가게 되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