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세란헌(洗蘭軒) 주인께 / 林步

洪 海 里 2007. 10. 30. 06:16
 

세란헌(洗蘭軒) 주인께

- 洪海里

                                                                       

  요즈음 무릎의 상태는 좀 괜찮은가요?

  우이동 골짝에 터를 잡아 살면서 난정(蘭丁)1)을 처음 만났던 때가 7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되니 우리들의 교유도 어느덧 30여 년이 넘어서나 보군요. 난정은 춘란에 빠져 주말마다 남도의 산야를 헤매고, 나는 수석에 미쳐 남한강을 오르내리고 있을 때였지요. 풀을 좋아하는 사람과 돌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어울리게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는 30여 년 전의 그 집에서 그대로 살면서 며칠이 멀다하고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지내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이 세상과는 궁합이 맞지 않은 낡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이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시’라는 것을 평생 붙들고 살아온 것도 그렇거니와, 삼각산록에 복사꽃밭을 일구어 놓고 ‘우이도원(牛耳桃源)’이라 자칭하면서 봄철엔 시화제(詩花祭)를 가을철엔 단풍시제(丹楓詩祭)를 벌이고 있는 것도 눈 밝은 사람들이 본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어디 그뿐인가요? 매화꽃이 피어나면 세란헌(洗蘭軒)2)의 뜰에서 풍경소리를 들어가며 더덕주를 즐기고, 모란꽃이 피어나면 운수재(韻壽齋)3)의 소나무 그늘 밑에서 매실주나 홀짝이며 세월을 보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이 술독에 빠져 허송세월만 한 것은 아니었지요. 고불(古佛)4), 포우(抱牛)5)와 함께 ‘우이동시인들’을 만들어 스물다섯 권의 사화집을 엮어냈다는 것도 어디 적은 자랑입니까? 언젠가는 우리 시사에 이 시대의 은둔시파로 ‘우이시파(牛耳詩派)’가 한 줄쯤 거론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난정, 금년 봄에 도원에서 따다 담근 복사주가 잘 익었는지 한번 살펴보시구려. 소식 주면 금방 달려가리다.


(주)   1)난정 : 홍해리 시인의 아호,  2)세란헌 : 홍해리 시인의 당호,  3)운수재 : 임보의 당호,

      4)고불 : 이생진 시인의 아호,  5)포우 : 채희문 시인의 아호


임 보

 

(계간『시안』38호, 2007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