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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등급 / 김택근

洪 海 里 2007. 11. 7. 09:08

시인의 등급

우리 민족에게는 시를 향한 원초적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 그 옛날에도 장부의 으뜸 멋은 시를 잘 짓는 일이요, 시와 부(賦)를 짓는 힘과 솜씨로 인재를 뽑았다. 그 일꾼들이 나라를 끌고간 고려와 조선시대는 가히 ‘시인의 나라’였다. 조선의 동량들은 모두 사서삼경의 토양 위에 시의 꽃을 피워 올렸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시인이 넘쳐나고 있다. 시인이 거지보다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물신(物神)의 유혹에 시적 감흥이 자꾸 줄어들고, 시심이 메말라간다는데도 시인은 어느 때보다 많다. 그럼 이 땅에 시인은 얼마나 될까. 이 사람 말과 저 사람 말이 달랐다. 등단 매체가 어디냐에 따라 다소의 논란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떤 통과의례를 거쳤건 “내가 시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헤아리면 1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3만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가히 시인의 나라이다.

한국시인협회가 현대시 100년을 맞아 평론가 10명에게 대표시인 10명을 선정케하여 발표했다. 10대 가수, 10대 뉴스를 선정하듯이 10대 시인을 뽑은 것이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 김춘수, 이상, 윤동주, 박목월이 그들이다. 명성의 무게를 달아보면 누가 봐도 지극히 무난한 선정이었다고 보여진다. 시인들이 모여 있는 시인협회에서 주관한 작업이었기에 신중하게 진행되었을 거라 여겨진다. 하지만 시인들을 줄세우는 행사는 위험하다. 이육사, 신석정, 박두진, 김영랑, 김현승, 김종삼, 신동엽, 조지훈은 그보다 못한 시인들이냐고 따진다면 뭐라 할 것인가.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노래의 결과 향이 다른, 대중가수 이난영과 남인수 중 누가 노래를 더 잘하느냐 묻는 것과 비슷하다.

독자들이 선호하는 시인과 애송하는 시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일은 있어왔다. 흥미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론가를 동원하여 10대 시인과 시를 뽑는 것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다. 전문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론가들도 우리 시대를 대표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절차로 대표성을 부여받았는지 궁금하다. 시인의 시세계는 시대정신과 언어감각의 변화에 따라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일은 그래서 급해 보인다. 시인의 나라에서 ‘10대 시인 뽑기’는 시와 시인에 대한 무례이다.

〈김택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