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다시 읽는 나의 시 / 시인이여 시인이여

洪 海 里 2007. 12. 6. 16:53

시인이여 시인이여

- 시환詩丸


洪 海 里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 시환(詩丸)

   우리 옛 시인들은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시(詩)로 쓰고, 그 시를 쓴 종이를 찢어 환약(丸藥)처럼 똘똘 말아 환(丸)을 만들었다. 이 종이환을 시환(詩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시환을 냇가나 강가에 앉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고 괴로운 일을 잊곤 했다.

   말이 잊는다 하지만 어찌 시환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고 잊어지겠는가.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잊고 싶은 일이 있거나 증오ㆍ원한ㆍ시샘ㆍ불화를 씻고 싶을 때 그 사연을 적은 종이로 시환처럼 만들어 물에 떠내려 보냈다. 냇가에 사는 사람은 시냇물에, 강가에 사는 사람은 강물에,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 무당들이 불행이나 병환을 낫게 할 목적으로 그 액살을 적어놓은 부적을 작은 배에 실어 냇가나 강가, 바닷가에서 떠내려 보내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였다. 감옥소에서 나온 자식을 냇가나 강가에 데려다가 발을 씻게 하는 행위라든가, 죽을 때도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흐르는 물’은 감정적인 것, 정신적인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씻어 없애고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정화작용을 했다. 세월을 ‘흐르는 물’이란 뜻으로 유수(流水)와 같다고 했다. 그 무엇이건 ‘흐르는 물’에 버리면 흘러 사라지고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전통적 사상이었다. 

 http://garosu.nayana.co.kr/cgi 에서 옮김

 

<가 흐르는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