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감상> 우리들의 말 / 유지현

洪 海 里 2007. 12. 26. 11:44

우리들의 말

 

洪 海 里

 

거리를 가다 무심코 눈을 뜨면
문득 눈 앞을 가로막는 산이 있다
머리칼 한 올 한 올에까지
검은 바람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부끄러운 알몸의 시대
그 어둠을 가리우지 못하면서도
그 밝음을 비추이지 못하면서도
거지중천에서 날아오고 있다
한밤을 진땀으로 닦으며 새는
무력한 꿈의 오한과 패배
어깨에 무거운 죄없는 죄의 무게
깨어 있어도 죽음의 평화와 폭력의 설움
눈뜨고 있어도 우리의 잠은 압박한다
물에 뜨고 바람에 불리우고
어둠에 묻히고 칼에 잘리는
나의 시대를 우리의 친화를
나의 외로움 우리의 무예함
한 치 앞 안개에도 가려지는 불빛
다 뚫고 달려갈 풀밭이 있다면
그 가슴 속 그 아픔 속에서
첫사랑같은 우리의 불길을
하늘 높이 올리며 살리라 한다.

    - 시집『우리들의 말』, 삼보문화사, 1977

 

 

* 이해와 감상

 살아가면서 누구나 항시 진실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거짓과 위선으로 차 있다. 거짓과 위선은 특정한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거짓을 행하는 자 그리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무감각하게 사는 자들이 져야하는 공동의 책임이다. 만약 거짓이 한 개인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관련을 맺고 있다면 우리의 책임은 무거워지며 죄의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위선으로 넘실대는 세상에 대한 절망감은 누구나 한번쯤은 절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대한 사회의 어두운 거짓을 무감각하게 보아버리는 데 반하여 시인은 온몸으로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한다. 「우리들의 말」이 담고 있는 것은 부끄러움과 절망감에 대한 고백이며 어두운 세상을 넘어서려는 의지적 노력이다.
 시인은 일상의 삶 속에서 문득 `눈앞을 가로막는 산'같은 캄캄한 절망감을 느낀다. 어두운 절망감은 암울하고 억압적인 외부 상황을 도외시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시인의 양심에서 비롯된다. 그 양심은 `한밤을 진땀으로' 지새는 괴로움을 수반한다. 오한의 서늘함과 패배의 수치감은 개인의 나약한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억눌림에 대한 최소한의 거부이며 각성이다.
`무력한 오한과 패배'가 의미하는 괴로운 뒤척임은, `물에 뜨고 바람에 불리우고 어둠에 묻히고 칼 잘리는' 현실을 뚫고 달려갈 의지를 다지는 비판적 반성의 시작이다. 제자리에서 온전한 모습을 지니지 못하게 하는 물과 바람, 어둠, 칼은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외부적 조건이다. 암담함이 온통 지배하는 와중에도 시인은 한줄기의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산 같은 절망과 한밤을 괴로움과 무력감으로 지새는 시간을 뚫고 달려갈 풀밭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풀밭은 고통과 압박과는 대척점에 서는 상징적 공간이다. 하늘 높이 상승하는 불길은 부끄러움이 가득한 현실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 불길은 어둠을 밝히는 환희의 빛이며 `첫사랑'처럼 순결한 것임에 틀림없다. [해설: 유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