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百草가 百病을 다스리듯 / 洪海里

洪 海 里 2008. 1. 10. 16:42

 

 

百草가 百病을 다스리듯

 

 

백초가 백병을 다스리듯
백 편의 시를 항아리에 넣고
석달 열흘 달이고 달여 조청을 고으면
시도 백병을 다스리는 신약이 될 순 없을까
오늘은 백년 묵은 소나무 아래 자리잡고
푸른 하늘 흰구름과 맑은 바람과
우이천 물소리를 한 곳에 모아
탕약을 달이노니
그대여, 삼십 년 술독을 풀게 하는
잡초가 영초이듯, 
백초가 백병을 다스리듯,
그런 詩를 위하여
잡초만도 못한 시 한 편을 잡고
밤새도록 낑낑대는 나의 봄이여
풀꽃 같은 시 한 편 낳고 싶어라
풀꽃 같은 시 한 편 낳고 싶어라.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밥으로'라고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 몸에 쌀과 밥이라는 양식이 필

요하듯이, 마음에도 양식이 필요한 법, 다라서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써 마음의 양식을 삼는다.

  그러한 양식들 가운데 시집 한 권 혹은 시 한 편이 우리에게 주는 안식과

위안 또한 적지 않다.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이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역시 백초가 백병을 다스리듯, 자신의 시어가

삶의 애환을 치유하는 신약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일 터, 이를

위해 시인들은 밤을 밝혀가며 가장 잘 '달여진' 단어 하나를 찾아내는

작업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풀꽃

같은 시 한 편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란 때로 꼬박 석 달 열흘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액체를 오래오래 끓여서 진하게 만드는 일, 혹은 약제 따위에

물을 부어 우러나오도록 끓이는 일, 우리는 이러한 동작을 일컬어 '달이

다'라고 한다. 간장을 달이고, 엿을 달이고, 한약을 달이는 일---.

  생각해 보면 거기엔 언제나 긴 기다림이 있었다. 가마솥 앞에서, 아니면

화덕 옆, 혹은 약탕기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맹탕이던 액체가 적절한

농도의 진한 빛을 띠게 되눈 순간을 기다리던 일. 일이 되도록 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한편으로, 그

기다림은 늘 무언가가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

주었으므로 무언가를 달이는 일은 참으로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 시로 읽는 한글 맞춤법

 

'달이다'와 '다리다'의 구별

 

  문제는 그 '달이는 일'이 종종 발음의 문제 때문에 '다리는 일'로 표현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음이 그 예이다.

 

(1) ㄱ. 뜰에서 '다리는' 구수한 �약 냄새만이 구미를 돋우어 줄 뿐이다.

     ㄴ. 한 시간 정도 지속적으로 '다리면' 조청이 되는데 이것을 포장하면 조청 완제품이 된다.

 

    이와 같은 문장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듯이, 각각 '달이는', '달이면'으로 표기해야 하는

단어가 '다리는', '다리면'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형태소의 원형에 대한 의식 없이

소리나는 대로 적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달이다'로 하여금 "옷이나 천 따위의 주름이나 구김을 펴고 줄을 세우기

위하여 다리미나 인두로 문지르다"는 뜻의 '다리다'와 혼동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이와 같이, 국어 단어들 가운데 형태상으로 분명히 구별되는 단어의 쌍들이 표면 층위에서

동일하게 발음됨으로써 표기의 혼란을 야기하는 예로는 '달이다'와 '다리다' 외에도 비교적

그 수가 많은 편이다. 다음을 보자.

 

(2) ㄱ. 조리다, 졸이다---조리다

     ㄴ. 주리다, 줄이다---주리다

     ㄷ. 저리다, 절이다---저리다

     ㄹ. 드리다, 들이다---드리다

     ㅁ. 부치다, 붙이다---부치다

 

  이러한 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형태상으로는 엄연히 별개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인데도,

(2)에서 제시한 것처럼 발음이 같음으로써 두 단어의 쓰임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개별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2ㄱ)의 '조리다'와 '졸이다'의 의미를『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따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3) ㄱ. 조리다 : 어육이나 채소 따위를 양념하여 간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국물이 적게 바짝 끓이다.

             생선을 조리다.

             멸치와 고추를 간장에 조렸다.

         ㄴ. 졸이다

            1. 찌개, 국, 한약 따위의 물이 증발하여 분량이 적어지다.

               간장이 햇볕에 졸다.

               찌개가 바짝 졸았다.

            2. '마음', '가슴' 따위와 함께 쓰여 속을 태우다시피 초조해 하다.

                마음을 졸이다.

                가슴을 졸이다.

 

 <『시로 읽는 국어 정서법』강희숙,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