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
법주사에서
洪 海 里
가지고 온 것 하나 없어도
가슴은 마냥 풍성하다
눈을 닦아주고
귀를 씻어주는
저 빛나는 햇살과 겨울 물소리
미투표자를 호명하는
확성기의 요란한 울림
골짜기의 굿꿋한 소나무숲을 쓰러뜨리고
석연지에 어리는 부처님 미소까지
휘젓고 있는 저 수유의 바람
산그늘 쏟아지는 뜰을 거닐다
돌아나오는 길
'물결 갈라지는 곳에서 이별하자'는
대사의 말씀
수정교 맑은 물에 고이 비치고
경내 가득 깔리는 풍경소리 소리
이 한가로움 속
우린 하늘에 뜬 흰 구름장일 뿐.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민성사)
□ 시 해설
법주사(法住寺)는 신라 진흥왕 14(553)년 의신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776년 진표 및 영심 스님 대의 중창을 거쳐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 중수를 거듭했던 사찰이다. 조선조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 개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까지 거느린 대찰로서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절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버려, 1624년 벽암 스님에 의해 중창을 거듭했고, 1851년 국가적 규모의 중수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법주사 명칭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진흥왕 때 의신이라 불리우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 스님께서는 널리 불법을 구하고자 머나먼 천축국에 이르러 한동안 공부를 마치신 후,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귀국하셨다 한다. 이후 스님께서는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절을 지을 만한 터를 찾아 이리 저리 헤매던 중 스님께서 타고 다니시던 흰 노새가 현재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부짖더라는 것이다. 이에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스님께서는 묘한 생각이 들었고, 이내 자리를 멈춰 산세를 둘러보니 수려한 산세가 절을 짓기에 안성맞춤이라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새의 등에 싣고 다니던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이곳 절 이름을 법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를 들어서며 시인을 감동시킨 것은 빛나는 햇살과 겨울 물소리이다. 그 햇살과 물소리가 눈을 딱아주고 귀를 씻어준다. 이들이 있기에 가지고 온 것 하나 없어도 마음은 풍성하기만 하다. 그러나 세속에서의 시끄러움, 확성기의 요란한 울림이 골짜기의 소나무 숲과 석연지에 어리는 부처님의 미소까지 휘젓는다. 돌아나오는 길에 문득 '물이 갈라지는 곳에서 이별하자'는 대사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미 경내는 풍경소리가 깔릴 만큼 한가로워졌다. 이 한가로움 속에서 우리 인간은 오직 하늘에 뜬 흰 구름장에 지나지 않는다.
(『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박호영 저, 한성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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