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황금감옥』2008

시를 먹다

洪 海 里 2008. 4. 29. 12:11
詩를 먹다

洪 海 里

 


시집『봄, 벼락치다』가 나온 날 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거기가 여기인 초월의 세상,
꿈속에서였다
아흔아홉 편의 시를 몽땅 먹어치웠다
그래도 전혀 배가 부르지 않았다
이밥을 아흔아홉 사발을 퍼먹었더라면
아니 아흔아홉 숟가락만 떠먹었어도
배가 남산만해서
숨 쉬기도 힘들어 식식댔을 텐데
옆에 있던 노 대통령이 무언가 암시하고 있었다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임보 시인은 대대로 야당이었다며
새로 나올 시론집의 목차를 보여 주었다
작고 시인과 생존 시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나다 순의 맨 끝에 나도 언뜻 보였다
당근을 심은 밭가였다
제주도 어디인 듯 척박한 땅이었다
이생진 시인이 겨자씨만큼이나 작은 씨앗이 든
콩알만한 열매를 한 줌 쥐어 주었다
구황 식물이라면서 밭에 뿌려 두라고 했다
옆에 있던 황금찬 시인께서
오랫만에 나온 시집을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시골집이었다
어머니가 지붕에 이엉을 얹고
마지막 용마름을 올리고 단단히 잡아매고 있었다

새벽 두 시,
이제『봄, 벼락치다』의 아흔아홉 편의 시는 사라지고 없다
구황 작물의 작디작은 씨앗을 뿌리러 나가야겠다
저 거친 황야로
개 짖는 소리 들리는 꼭두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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