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권두시론> 난蘭과 시詩

洪 海 里 2008. 5. 9. 14:40

<권두시론>


난蘭과 시詩

│ 洪海里(시인)



진초록 보석으로 날개를 달고

눈을 감고 눈을 뜬다

만 가지 시름이 적막 속으로 사라지고

가장 지순한 발바닥이 젖어 있다

내장산 비자림 딸깍다릴 지날 때에도

영원은 고요로이 잠들어 있었거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투명한 이른 봄날 이른 아침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여인女人의 중심中心

실한 무게의 남근男根이 하늘에 걸려 있다.

ㅡ 졸시 「난꽃이 피면」


1.

난이란 무엇인가?

난은 풀이다. 잡초다. 산에서 자생하는 야생초를 사람들이 가까이 옮겨 놓고 인격과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래서 난이 되었다.


2.

난은 왜 기르는가?

나물로 무쳐 먹지도 못하고 국을 끓여 먹을 수도 없고 죽을 쑤어 먹지 못하는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풀을 왜 사람들은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가.

풀은 풀이로되 뻣뻣하기 때문이다. 죽을 쑤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꺾이지 않고 유연하여 휘어지면서도 곧게 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난에게 우리와 같은 인격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난의 정신은 하늘을 날고 있으니 함부로 안으려 들지 말 일이다. 난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신분을 증명해 주는 꽃이 아닌가.


3.

그러면 난은 무엇인가?

난은 도요 선이다. 난은 생명이요 인식이다. 난은 조화요 통일이다. 난은 철학이요 예술이다. 난은 인격이요 정신이다. 난은 농사요 종교이다.

우리가 물신만을 숭배하다 보니 살부殺父 살모殺母의 세상이 되고 피비린내 나고 시끄러운 소인배 졸부들의 어둡고 탁하고 더럽고 삭막한 시대가 되었다.


4.

난초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난은 사람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시인도 의사도 과학자도 영화배우나 기술자도 농부나 은행가도 미치게 한다.


5.

난은 섹시하다. 꽃이 식물의 섹스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난꽃만큼 섹시한 꽃은 없다.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늘에는 남근을 드러낸 사내가 당당히 떠 있고 지상에는 발가벗은 여인네가 반듯이 누워 있다. 꽃 한 송이 속에 천지조화를 이루고 있다.

꽃이란 것이 온갖 진기한 색깔과 형태와 향기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을 따름이다. 꽃은 번식을 위한 섹스일 뿐이다. 종을 영속시키기 위한 교묘한 노력일 뿐이다. 난초를 뜻하는 ‘orchid’가 그리스어로 고환이 아닌가.


6.

난은 군자다.

군자란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며 순리에 따르는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이다. 춘추 전국시대에 학식이 높고 덕망이 있으며 재질이 뛰어난 선비였던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 신능군을 골라 그들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군자라 칭했던 것이다. 난초 매화 국화 대나무가 고결하고 기개가 있다 하여 앞의 네 인물에 비유하고 있는 바 그 가운데서 난은 다른 식물에 비해 그 청초함이 수려하므로 높은 지기의 선비들이 좋아했다. 그들은 인격과 정신 수양이 난 속에 숨어 있는 청절한 정신적 미와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난을 가까이하며 그림으로 그렸던 것이다.


7.

난은 풀이다.

난을 풀로 보지 못하고 한 촉에 얼마요, 한 분에 얼마라고 계산을 하니 난은 돈이 되고 보석이 되어 우리 눈을 멀게 한다. 난이 풀임을 알아야 한다. 난이 풀로 보여야 한다. 풀인 난을 알고 난을 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8.

난은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20년, 30년을 길러도 처음 그대로요, 꽃도 피지 않고 촉수도 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자연이다. 자연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 인격으로 대하고 같이 대화하며 생활해야 한다. 약간의 무관심과 적당한 게으름이 약이다. 자연은 그런 것이 아닌가. 자연은 가장 오묘하고 아름다운 詩이다. 우리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시이다. 난은 시이다. 서정시요 서사시이다.


9.

난이 있는 방에 들어가라. 詩가 있는 방에 들어가라.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마치 난초를 가꾸고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 곧 그것과 동화된다.’라 한 바 이 말은 군자의 교제는 바로 난을 가꾸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인 것이다.


10.

蘭은 詩이다.

화초 취미는 난으로 시작해서 난으로 끝나는 것이 제일이다. 문학도 시로 시작해서 시로 끝난다. 시는 문학의 귀족이다.

‘금조琴操’에 보면 공자가 전국을 주유하다 어느 깊은 골짜기에 이르러 난초가 무성히 자라 향을 발하고 있음을 보고 말하기를 “향기로운 난초가 비록 많은 잡초와 함께 있어도 여전히 왕 노릇하는 자로서의 향기를 잃지 않고 있구나!”라고 하였다.


우리의 시가 한 분의 난초처럼 향기를 내뿜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난을 녹색의 보석이라 하듯 시도 녹색의 보석이 되어야 한다.

(월간『우리詩』2008.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