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서평> 洪海里 시집『황금감옥』/ 전형철(시인)

洪 海 里 2008. 6. 13. 20:36

<시집 서평>

 

『황금감옥』(2008. 우리글)

 

   - 전형철(시인)

 

   시에 대한 또는 시인에 대한 선입견이 선입되지 않는 시대이다. 시인들의 발은 재재바르고 다채로워 뭇사람들의 눈길이 따르지 못한다 한다. 시인의 방기인지, 시를 읽는 사람들의 안목 때문인지 명확히 책임의 경계를 지을 수는 없다. 시인은 다만 더듬이를 밖으로 하고, 제 안을 바라본다. 누구도 가 닿아 본 적 없지만 누구나 제 깜냥에 따라 달려가고 있는 곳에 그 시선의 과녁이 있다.

  홍해리의 시집 『황금감옥』은 한 곳을 오래 지켜온 자 또는 한 곳을 오래 지켜본 자의 기록이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구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황금감옥」의 일부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시인은 호박꽃 속에 갇힌 호박벌을 주시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 관찰되는, 또는 한 계절 아이들의 장난거리에 불과한 사건을 통해 그는 생의 한 지경까지 그 외연을 확장시킨다. 혁명이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그저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을 꿈꾸던 꺽정이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할 수 없는 처녀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호박 같은 세상"을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라는 전언은 견자(見者)로서의 시인이 안에서 밖으로 타전하는 가냘프고도 진지한 메시지가 된다. 시인의 이 같은 태도는 "햇빛과 비바람이 둥근 파문을 만들고/ 천둥과 번개가 아름답게 다듬어"(「波紋」)밖으로 번져나가는 나무의 모습에서도 산견된다. 나무가 계절에 따라 잎을 피우고 떨구는 것을 하나의 파문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눈길에서 느리지만 생의 비의를 탐침해가는 지난한 걸음걸이를 발견하게 된다.

  홍해리의 시집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말놀음이다.

 

"여자를 밝힌다고 욕하지 마라

음란한 놈이라고

관음증 환자라고 치부하지 마라

입때껏 치부를 한 것도 없고

드러낼 치부도 하나 없다"

 -「여자를 밝히다」의 일부

 

 첫 치부는 '致賻'이고, 두 번째 치부는 '致富'이고, 세 번째 치부는 '恥部'이다. 시의 제목 또한 다 읽고 나면 여성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여자를 드러내고 조명하는 것이라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즐거운 말놀음은 「보지寶池를 보다」,「요요」,「시수헌의 달빛」등에서도 맛깔스럽게 구사된다.

  40년이라는 오랜 시력의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진지한 응시와 직방의 말놀음이라는 두 자루의 칼을 쥔 채 지금은 잃어버린 시의 선입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계간 『서정시학』2008년 여름호. 제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