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시인들> 제18집『세상의 모든 적들』
시작 노트
앞의 다섯 작품은 四短詩, 그리고 맨 끝의 <驚蟄>은 日記의 형
식을 빌어 쓴 예언적인 시다. 「現代詩學」9월호에 선보인 <호메
로스>도 같은 계열의 작품이다. 우리들이 볼 수 없는 未來를 미
리 당겨 과거 속으로 밀어 넣는 작업이다. 이름하여 '未來詩'라
고 해본다.
나머지 작품들은 일상에서 얻은 雜詩들이다.
- 林 步
1995년, 나에게는 엄청난 해였다. 1월에는 뉴질랜드와 호주와
바다에 미쳤고, 4월에는 대마도와 사쿠라지마를 헤맸으며, 8월에
는 지중해로, 갈릴리 호반으로, 사해로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돌
아와서는 제주도·우도·난도·비양도·차귀도·가파도·마라도·
거문도·상백도·하백도·사량도·수우도·백령도로 쉴새없이 떠
돌아다녔다.
바다와 시와의 관계를 수평선상에 떠오르는 해를 보듯 볼 기회
가 많았다. 그때마다 내 마음의 수평선에도 떠오르는 해가 있었
다. 나는 해상의 폭군 같았다. 허공을 점령한 잠자리처럼 조용하
면서도 가슴속은 연산군이나 네로 황제처럼 울렁거렸다.
시의 폭력배, 그리고 최후의 발악. 그러나 기분은 사악하지 않았
다. 나그네치고는 호강하기도 했지만 나의 배낭 속에는 늘 가냘픈
내가 시를 챙기고 있었다.
세네카도 네로 옆에서 한 번쯤 네로처럼 미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은 시인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가식에서 벗어나 많이 미쳐야 하겠다.
- 李生珍
이 세상은 이상하게도 기쁨은 잠깐이고, 슬픔은 길게 남는다. 따
라서 우리에게 기쁨은 가볍고, 슬픔은 무겁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나의 시는 주로 슬픈 노래를 부르며 슬픈 사람들과 만
나게 될 것 같다. 어차피 착각을 유발시키기는 마찬가지지만, 가
볍고 건조한 쪽의 언어 유희보다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슬픔의
우물에서 길어올리는 순수의 눈물이 훨씬 전달력이 강하고 생명
력도 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약은 써야 하고 시는 슬퍼야 효
험이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 채희문
一詩七斤
詩란 무엇인가? 시란 어떤 것인가? 어떤 것이 좋은 시인가? 詩
人은 무엇인가? 시인은 누구인가? 왜 詩이고 詩人인가? 다시 묻
는다, 나에게.
시를 평가하고 감상하는 일이 주관적일 뿐인데 좋은 시다, 나쁜
시다 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독단은 금물, 올바른 잣대가 없는 되강구나 말강구의 횡포, 그
들의 도끼 또는 독기……
詩를 쓰는 일이 더욱 어렵고 힘들다. 시는 말의 절, 절 같은 말,
말과 절, 청아한 목탁! 詩人이 아닌 사람이 병신인, 시인을 만들
어 내는 성능 좋은 기계를 가지고 시인 장사를 하는 장사꾼이 많
은, 우리의 시인공화국에서 시인 노릇 정말 어렵겠다. 자중할 일
이다. 자성할 일이다. 자존의 자존이다.
一詩七斤이다. 詩 한 편에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할 일이다.
- 洪海里
(『세상의 모든 적들』작가정신, 1995, 정가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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