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비타민 詩』2008

<시> 일탈逸脫

洪 海 里 2012. 5. 9. 05:13

일탈逸脫


 

洪 海 里

 


  1
  귀 눈 등 똥
  말 멱 목 발
  배 볼 뺨 뼈
  살 샅 손 숨
  씹 이 입 좆
  침 코 턱 털
  피 혀 힘---

  몸인 나,
  너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린다
  그것이 한평생이다.

  2
  내가 물이고
  꽃이고 불이다
  흙이고 바람이고 빛이다.

  그리움 사랑 기다림 미움 사라짐 외로움 기쁨 부끄러움

슬픔 노여움과 눈물과 꿈, 옷과 밥과 집, 글과 헤어짐과

아쉬움과 만남 새로움 서글픔
  그리고 어제 괴로움 술 오늘 서러움 노래 모레 두려움

춤 안타까움 놀라움 쓸쓸함
  (내일은 없다)
  그리고 사람과 삶, 가장 아름다운 불꽃처럼
  우리말로 된 이름씨들 앞에서
  한없이 하릴없이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것은
  아직 내게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한 그릇의 밥이 있어서일까
  일탈이다, 어차피 일탈逸脫이다.



* 단상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는 각자 다릅니다.

한평생의 몸,즉 나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리는 신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부연설명 없이

간결하면서도 진지합니다.

바슐라르가 말하는 4대 원소로 이루어진 우리 몸과 그 몸을 감싸고 도는 그리움에서 쓸쓸함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삶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이름씨들입니다.

이 시는 현실감 있는 서정으로 우리 삶의 질서와 원리를 아직 남아 있는 어둠으로 환기시킵니다.

(내일은 없다)고 짐짓 정체성으로 일갈하지만 '한 그릇 밥'이 있어 삶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애착을 역설로 묵직하게 울려 줍니다.

그것이 일탈이고, 어차피 일탈입니다.

                                                       출처 : 혜일 사랑, 권정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