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비타민 詩』2008

洪海里 시집『비타민 詩』5편 다시 읽기

洪 海 里 2008. 11. 15. 09:19

가을 서정抒情 

 

洪 海 里


 

1. 가을시詩 


 여름내 말 한마디 제대로 고르지 못해
 
비루먹은 망아지 한 마리 끌고 올라와
 
오늘은 잘 닦은 침묵의 칼로 목을 치니
 
온 산이 피로 물들어 빨갛게 단풍 들다.
 
 
2. 상강霜降

 

가을걷이 기다리는 가득한 들판
 
시인들은 가슴속이 텅텅 비어서
 
서리 맞은 가을 거지 시늉을 내네
 
천지에 가득한 시를 찾아가는 길
 
가도 가도 머언 천리 치는 서릿발
 
시 못 쓰는 가을밤 바람만 차네.
 
 

3. 칼

 

눈썹 한 올 하늘에 떠서 푸르게 빛나고 있다!


 
 *
1350년에 만들어졌다는 '칼'을 꿈에 선물 받고

  들여다보니 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음.
 
 

 

 

꽃다지꽃

꽃에서 꽃으로 가는 완행열차
나른한 봄날의 기적을 울리며 도착하고 있다
연초록 보드란 외투를 걸친 쬐그마한 계집애
샛노랗게 웃고 있는 앙증맞은 몸뚱어리
누가 천불나게 기다린다고
누가 저를 못 본다고
포한할까 봐 숨막히게 달려와서
얼음 녹아 흐르는 투명한 물소리에, 겨우내내
염장했던 그리움을 죄다 녹여, 산득산득
풀어 놓지만 애먼 것만 잡는 건 아닌지
나무들은 아직도 생각이 깊어 움쩍 않고
홀로 울고 있는 초등학교 풍금소리 가득 싣고
바글바글 끓고 있는 첫사랑,


꽃다지꽃.


 

소금쟁이


북한산 골짜기
산을 씻고 내려온 맑은 물
잠시,
머물며 가는 물마당
소금쟁이 한 마리
물 위를 젓다
뛰어다니다,
물속에 잠긴 산 그림자
껴안고 있는 긴 다리
진경산수
한 폭,

적멸의 여백.


 

 

무화과無花果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닌데
그녀는 왜 꼭꼭 숨기고 있는지
대체 누가 그녀를 범했을까
애비도 모르는 저 이쁜 것들, 주렁주렁,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다니
은밀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밤 슬그머니 문지방 넘어가 보면
어둠이 어둡지 않고 빛나고 있을까
벙어리처녀 애 뱄다고 애 먹이지 말고
울지 않는 새 울리려고 안달 마라
숨어서 하는 짓거리 더욱 달콤하다고
열매 속에선 꽃들이 난리가 아니다
질펀한 소리 고래고래 질러대며
무진무진 애쓰는 혼뜬 사내 하나 있다.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


제 몸을 바쳐
저보다 강한 칼을 먹는
숫돌,

영혼에 살이 찌면 무딘 칼이 된다.

날을 세워 살진 마음을 베려면
자신을 갈아
한 생을 빛내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서로 맞붙어 울어야
비로소 이루는
相生,

칼과 숫돌 사이에는 시린 영혼의 눈물이 있다.

 

 

* Selected by Poetess Shyjean W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