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지나간 자리
홍 해 리
배 지나간 자리란 말이 있고
죽 떠먹은 자리란 말도 있긴 하지만
배가 지나가고 나면
물이 일어서며 아우성치는 소리
눈으로 들어본 적 있는가
헤어지면 죽고 못 살 것만 같지, 허나
허연 물거품은 시간 속으로 스러지고
바다는 언제 그랬더냐고 웃고만 있지
너를 보낸 내 가슴바다도
물길 갈라지고 파도는 깨어지며 울었었지
단단한 것은 언젠가는 깨어진다고
완벽하고 단단한 사랑이여
부드러운 물은 부드러운 말로 부드럽게 말하지
부드럽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아는 이 세월밖에 또 있겠는가
지나고 나면 다 배 지나간 자리
죽 떠먹은 자리일 뿐인데
바다여 파도여
아우성치지 말라
눈으로 듣고 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바다여 파도여 섬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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