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洪海里 시선집『비타민 詩』/ 김금용

洪 海 里 2008. 11. 16. 11:39

 

洪海里 시선집『비타민 詩』 (2008, 우리글)

 

 홍해리 시인의 시선집『비타민 詩』가 '우리글'출판사에서 나왔다.

재작년부터『봄, 벼락치다』『푸른 느낌표!』(2006)『황금감옥』(2008) 을 내더니, 그간의 시편을 정리해서 시선집으로 다시 묶어냈다.

그만큼 이 시선집엔 엑기스만 실린 셈,

이 한 권으로 독자들은 충분히 이 시인만의 독특한 개성이,시적 성취가,어떻게 시정신을 타고 정화되어 표현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0 여 년간 '우이동시인들'의 주 리더로서 '우이시낭송회'를 이끌어오다 마침내 2007년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를 만들어 월간『우리詩』를 이끌고 계신 이 분의 순수시 문학정신에 쏟는 정열과 고집스러울 만큼의 시에 대한 진정성과 그 사랑은 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마술사처럼 시어를 새롭게 리듬을 넣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편들을 통해 홍해리 시인만의 고유한 색깔과 냄새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함께 뒹굴며 시와 노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시집『봄, 벼락치다』2006)

 

 

봄, 벼락치다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시집『봄, 벼락치다』2006)

 


네 앞에 서면

나는 그냥 배가 부르다


애인아, 잿물 같은

고독은 어둘수록 화안하다


눈이 내린 날

나는 독 속에서 독이 올라


오지든 질그릇이든

서서 죽는 침묵의 집이 된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난타



양철집을 짓자 장마가 오셨다

물방울 악단을 데리고 오셨다

난타 공연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빗방울은 온몸으로 두드리는 하늘의 악기

관람하는 나무들의 박수소리가 파랗다

새들은 시끄럽다고 슬그머니 사라지고

물방울만 신이 나서 온몸으로 울었다

천둥과 번개의 추임새가 부서진 물방울로

귀명창 되라 귀와 눈을 씻어주자

소리의 절벽들이 귀가 틔여서

잠은 물 건너가고 밤은 호수처럼 깊다

날이 새면 저놈들은 산허리를 감고

세상은 속절없는 꿈에서 깨어나리라

깨어지면서 소리를 이룬 물방울들이

다시 모여 물의 집에 고기를 기르려니,


방송에선 어디엔가 물 난리가 났다고

긴급 속보를 전하고 있다

若水가 水魔가 되기도 하는 생의 변두리

나는 지금 비를 맞고 있는 양철북이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

 

먹통사랑 

 

제자리서만 앞뒤로 구르는

두 바퀴수레를 거느린 먹통,

먹통은 사랑이다

먹통은 먹줄을 늘여

목재나 석재 위에

곧은 선을 꼿꼿이 박아 놓는다

사물을 사물답게 낳기 위하여

둥근 먹통은 자궁이 된다

모든 생명체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어머니의 자궁도 어둡고

먹통도 깜깜하다

살아 있을 때는 빳빳하나

먹줄은 죽으면 곧은 직선을 남겨 놓고

다시 부드럽게 이어진 원이 된다

원은 무한 찰나의 직선인 계집이요

직선은 영원한 원인 사내다

그것도 모르는 너는 진짜 먹통이다

원은 움직임인 생명이요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직선이 된다

둥근 대나무가 곧은 화살이 되어 날아가듯

탄생의 환희는 빛이 되어 피어난다

부드러운 실줄이 머금고 있는

먹물이고 싶다, 나는.

 

(시집『푸른 느낌표!』2006)

 

 

귀북은 줄창 우네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뭇없는 황홀궁전

둥근 바람소리가 파문을 기르며 굴러가는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네


너무 작거나 큰 채는 북을 울리지 못해

북은 침묵의 늪에 달로 떠오르네


늘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

때로는 천 개의 섬이 되어 반짝이고 있네


(시집『황금감옥』2008)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詩의 나라

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生生한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行과 行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洪海里인가.

(시집『봄, 벼락치다』2006)


 

본명 : 洪峰義, 충북 청원 출생.

1964년 고려대학교 영문과 졸업.

현재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 이사장. 월간『우리詩』발행인


시집 『투망도』(선명문화사, 1969) 『화사기』(시문학사, 1975) 『무교동』(태광문화사, 1976) 『우리들의 말』(삼보문화사, 1977)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민성사, 1980) 『홍해리 시선』(탐구신서 275, 탐구당, 1983)『대추꽃 초록빛』(동천사, 1987) 『청별』(동천사, 1989) 『은자의 북』(작가정신, 1992) 『난초밭 일궈 놓고』(동천사,1994) 『투명한 슬픔』(작가정신, 1996) 『애란』(우이동사람들, 1998) 봄, 벼락치다 (2006년)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황금감옥!』(2008우리글)『비타민 詩』(2008우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