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소시집 해설>
목련나무 환하게 꽃등 켤 때
손 현 숙(시인)
티베트 사람들은 누구라도 일생에 한 번은 순례의 길을 떠난다고 합니다. 오체투지하며 가는 그 길은 너무 길고 험해서 종종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데요, 집에서 출발해서 티베트의 수도 라사의 포탈라 궁까지는 짧게는 삼 개월 길게는 일 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일보 삼배처럼 세 걸음에 한 번씩 서슴없이 땅바닥에 온몸을 던지는 방법입니다. 팔, 다리, 손바닥, 팔꿈치, 무릎, 가슴과 배를 땅바닥에 대는 것도 모자라서 이마를 땅에 찧기도 합니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 앞섶에서는 뽀얗게 먼지가 떨어집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까만 얼굴에는 마치 신의 축복처럼 하얀 흙먼지가 묻어 있습니다. 작고 작은 인간이 신을 향해 바치는 기도. 그저 신앙심이라 말하기에는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서늘합니다. 라사로 가는 도중에는 반드시 산도 만나고 강도 건너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산을 만나면 만나는 대로 기꺼이 오체투지하며 산을 기어오르고, 강을 만나면 또 강기슭을 돌아 순례의 길은 이어집니다. 온몸이 녹아내려 뼈 마디마디가 부서질 때까지, 그래서 자신의 부리로 털을 뽑고 발톱을 뽑아버리는 사투 끝에 새 삶을 얻는 솔개처럼 그들은 몸의 고통을 통해 신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거라 들었습니다.
선생님, 새해 새 날을 헐어 벌써 여러 날을 써버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선생님은 시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계시겠지요. 선생님은 티베트의 순례자들처럼 기도하듯, 오체투지하듯 평생 밤낮으로 시에 정진하시다가 결국은 몸도 많이 상하셨지요. 불편한 눈 때문에 힘들어 하실 때도, 허리 수술로 오래 고통스러워 하셨을 때도 저는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제 악마적인 상상력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죽음을 넘나드는 웅장한 시 몇 편 근사하게 건져내시겠거니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참 이상한 존재들이어서 제 고통 속에서 빛나는 시를 빚어내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시인이란 무릇 제 스스로에게 높은 작위를 내리는 족속이라는 말에 저는 무리없이 동의합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그 사실을 몹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끝없는 삶에 대한 관심이며 광기이며 사랑이며, 어쩌면 시인의 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재자가 지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 그것을 받아쓰는 일. 그리고 그의 손길 따라 모습이 변하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정직하게 그려내는 일. 그것이 바로 시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을 떠나서는 선생님의 시를 이해할 수도, 읽어 낼 수도 없겠습니다. 매화가 피면 매화주에 취해서 목련이 지면 목련 그늘 아래서, 여름이 되면 매미 소리에 넋을 빼앗기면서 선생님은 평생을 시의 순례자! 로 사셨네요.
햅쌀 안쳐 뜸을 들이듯이
새옷 지으려 고운 물을 들이듯이
사람 만나 정들이는 일도 그러하기를.
흙을 다져 자기를 빚듯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듯이
한 편의 시를 빚는 일도 그러하기를.
네 모습 눈에 밟혀서
네 목소리 귀에 선해서
발이 묶여
발목 잡혀 가지 못하네, 나.
- 「정情」전문
시인의 발목을 잡아 평생 이 자리에 주저앉힌 것은 ‘그녀’도 아니고 물론 ‘그’도 아닐 겁니다. 시! “흙을 다져 자기를 빚듯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듯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일"의 매혹은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거기에 한번 발 붙들리면 오도 가도 못하는 오소리 신세가 되는 법이지요. 정들이는 일은 사랑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합니다. 시 쓰는 일은 어쩌면 우주적인 사랑에 굴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에 밟히고 귀에 선해서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한 생! 그 뒤에 선연한 발자국으로 남아 있는 시! 한 편. 누가 이런 삶을 선뜻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신께서 시지프스에게 내린 형벌을 기꺼이,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선서 같은 것이니까요. 시를 쓰는 일이란 결국 매일 짓는 밥을 생전 처음 짓듯이, 그렇게 꾸준히 정성껏 행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하는 길인가 봅니다. 끊임없이 포탈라 궁을 향해 오체투지 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처럼 시인은 맹목으로 그곳을 향해 가는 아픈, 아름다운 존재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이 맑으면 날 수 있다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린 소녀
땅 위에 사뿐 앉았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얼굴이 흰 소녀는 수많은 꽃등을 들고
여학교 화단가에 서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목련나무는
서늘한 불길에 싸여
환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백목련 날다」전문
폭넓게 바라보면 생존은 비극! 말없이 어떤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나의 생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터무니없이 작고 초라하기까지 할 테니까요. 무심의 순간에서 선택의 순간까지 소녀는 교실 옥상, 그곳에서 무엇을 재빨리 본 것일까요. 영혼이 맑은 소녀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무엇이 보였을까요. 너무 지극한 것도 너무 정성스런 것도 죄! 라고 합니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밟고 올라 옥상 문을 열고, 건물의 모서리까지 걸어 나가는 동안 소녀의 머리 위로는 구름이 꽃처럼 피어났을 것이고, 그때 소녀의 뇌리 속으로 휙, 무엇이 한바탕 지나간 것일까요. 때는 봄. 소녀가 살아 있다면 지금 세상 나이로 몇 살이나 먹었을까요. 시인은 아직도 얼굴이 하얗던 그 여자아이를 땅에 묻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 함께 살고 있네요. 해마다 목련나무 환하게 꽃등 켤 때면 그때 그 아이가 거닐던 교정에서 시인은 죽음 또 저 너머를 서성입니다.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 하나. 어느 시인에게 들은 일화입니다. 벌써 옛날 일입니다. 홍해리 선생님 학급에 시인의 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시인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돌아가시고 담임인 선생님은 학생 어머니의 빈소에 찾아오셔서 오래, 아주 오래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시더라는 이야기.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도 퇴근 후에 찾아오셔서 조용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신 후 또 가만히 돌아가시더라는 이야기.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샌 나의 꿈
갈갈이 찢어져 날아가리라
<…>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황태의 꿈」부분
명태는 대구과의 바닷물고기. 이름을 여러 번 갈아칩니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것을 명태. 그것이 방금 죽어 싱싱한 상태로인 것을 생태. 냉동고에 넣고 급속히 얼린 것을 동태. 나무토막처럼 바싹 말린 것은 북어. 그리고 겨울 칼바람 속에서 눈발을 맞으며 얼다 녹기를 여러 날, 비릿한 해풍을 몸에 듬뿍 품고서야 비로소 명태는 황태로 거듭 살아납니다. 시인은 이 모든 오욕을 견디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치부를 몽땅 드러내 보일 줄 아는 사람들이 정작 시인인가 봅니다. 그리하여 당신과 나, 우리는 모두 무엇을 위해 오늘의 삶을 살아낼 것인가, 의심하고 질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마도 시인의 몫인 듯합니다. 그들은 만선의 꿈도 저버립니다. 스스로 아가리에 죽창처럼 대나무를 꿰어 바닷바람에 몸을 내어 말리는 존재.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이 모든 것을 두 눈 부릅뜬 채 지켜보면서 죽음을 목도하는 사람들. 죽어서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꿈을 꾸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어족들. 죽어서도 기어이 또 다른 삶을 살아내는 외롭고 춥고 높고 쓸쓸해서 눈물처럼 반짝, 기어이 사라져 버리는 시인들.
초겨울 호수 아래
깊은 잠 속
물고기 한 마리
반짝
얼음장 위로 뛰어올랐다.
머릿속에 밤새 반짝이던
시 한 편
번뜩
눈을 뜨는
시월 스무사흘 새벽,
날빛을 세운 채
또랑또랑 눈뜨고
떠 있는
하늘바다의 눈썹
냉염冷艶함이라니!
-「하현下弦』전문
몇 해 전, 북한산 아래 살다 강변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많은 풍경들이 낯설었지만 하늘의 달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모습이 변하는 달에게는 맹세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한 쪽 면만을 보여주는 달! 어쩌면 달의 본질은 저 보이지 않는 저쪽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부풀었다, 꺼뜨렸다, 제 몸집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줄 아는 달. 살아 있는 어떤 존재를 고개 꺾어 바라보는 일, 두렵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지요. 그중에서도 제 스스로 몸을 지워버리는 하현달은 삶의 근원적인 슬픔 같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의 계시처럼 느껴지면서 두려움을 동반하네요. 그래서 “호수 아래 깊은 잠 속 물고기 한 마리 반짝 얼음장 위로 뛰어올랐”나 봅니다. 하늘에서 문득 사라지는 우주의 비밀을 시인은 또 붓 한 자루 들고 받아 적으려고 합니다. “날빛을 세운 채 또랑또랑 눈뜨고 떠 있는 하늘바다의 눈썹” “시월 스무사흘 날 새벽”의 싸늘한 아름다움에 시인은 기어이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가진 것 없이 몸 벗어놓고
울다 가는 한 生이니
집도 절도 필요없다고
속으로 속으로 참지 못하고
나무에 달라붙어 시퍼렇게 내뽑는
투명한 가락 따라
한 生이 천추千秋인가 만세萬歲인가
이승과 저승을 잡고 있는
노래가 비소처럼 바래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칠흑의 한도 우름우름 날아가고
둥치에 달아놓은 낡은 집 한 채
길다, 8월!
-「길다, 8월! -선연嬋娟」전문
하루에 세 번쯤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땅거미가 어스름 질 무렵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입니다. 뭘까, 내가 나인 채로 살다가 문득 한꺼번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리는 듯 한순간. 허공 속으로 두 발을 내디뎌야 할 것만 같은 이 순간들이 나를 몹시도 두렵게 합니다. 매미! 허공중에 제 소리를 몽땅 풀어 여백을 빽빽하게 채워버리는 존재들. 소리로써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영매. 매미는 이 땅에서 15일 동안 울음을 울기 위해서 땅 속에서 오롯이 7년을 견딥니다. 그리고 그 울음은 온전히 수컷들만의 것이라고 하네요. 수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가차 없이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데, 그때 암놈은 살아남아 새끼를 키우는 거라 합니다. 그리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죠. 마치 죽기 위해 피어나는 꽃처럼 죽기 위해 삶을 우는 매미! 길고 긴 여름날 집도 절도 없이 울음을 살다 가는 한 생이라, 시인은 찰나가 한 생이고 천추이고 만세이고 그렇게 오래고 긴 세월이었다, 고 말합니다. 8월! 무척 길지요? 그러나 눈 깜짝 할 새 지나가 버린답니다.
하늘 높이 떠밀어 준 장대를
슬쩍,
놓는 순간
한 마리 새가 되어
바르르 떠는 난초잎 같은
천평선天平線을 넘어
허공으로
날개 없는 새는 추락하지만
나는,
더 높이 날아오른다
-「옐레나 이신바예바」전문
삶은 도전! 장대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러시아의 높이뛰기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 그녀는 세계 기록을 무려 20개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자로써는 최초로 높이 5미터의 벽을 막대기 하나로 뛰어 넘었답니다. 세기의 미녀이기도 한 그녀를 사람들은 ‘나르는 새’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시인은 그녀의 한 순간을 카메라의 눈처럼 단박에 잡아챕니다. 감동의 그때를 문자로 박아 그녀를 영원히 지면 위에 붙들어 놓았습니다. 땅을 딛고 스타트 했던 그 순간은 과감하게 생략한 채 다만 벽을 뛰어넘는 그때를 찰칵, 묘사하네요. 오직 한 곳을 향해 돌격하듯이 날아오르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인은 영원히 날아오르는 열반의 세계, 니르바나를 경험한 것일까요?
매화가 피었어도
눈으로도
귀로도 향기를 맡을 수 없더니
병원에서 돌아오자
꽃은 이미 다 지고
꽃이 있던 자리
쥐눈이콩만한 열매
가녀린 탯줄에 매달린 아기처럼
조롱조롱 맺혀 있다
초록빛 앙증맞은 눈빛을 찾아
내가 건너뛴 시간의
간극間隙.
개운하다, 풋사랑!
-「개운開雲」전문
선생님, 편찮으신 몸은 이제 쾌차하셨는지요. 계절이 여러 번 지나버렸지만 소식 한 번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시인은 수술대 위에서도 이 겁나는 순간을 어떻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전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저도 내심 선생님께서 병원에서 어떤 시를 들고 나오실까, 정말 궁금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떠났습니다. 꽃이 피는가 하면 장마가 오고 비가 억수로 내리는가 하면 단풍이 사람을 미혹합니다. 그렇게 넋을 놓자면 겨울, 또 봄……. 아직은 현실을 좋아할 나이가 아니기에 정신없이 계절을 따라다닙니다. 선생님은 병실에서도 매화가 궁금하셨나 보네요. 이렇게 저렇게 매화 향을 기억으로 뒤져보지만 병원생활은 역시 지루한 일상일 겁니다. 오랜 투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꽃은 이미 지고 그 자리에 벌써 열매가 조롱조롱 맺혀 있었나 보군요. 그렇게 세상은 언제나 나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건너 뛴 시간조차도 살아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호사라 생각합니다. 구름이 걷히고 시인은 또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시를 써 내려갈 것입니다. 시! 우주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시인은 꽃들의 절정과 침묵을 또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겠지요. 땅거미가 조용히 내리는 시간, 저는 또 두렵습니다. 겨울이 깊어 바람소리 날카롭네요. 그래도 이곳은 태양과 별과 달과 바람과 산과 꽃들이 있는 삶, 여기가 순례의 끝이겠지요.
- 월간『우리詩』(200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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