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詩> 보리밭

洪 海 里 2009. 5. 21. 04:40

 

♧ 보리밭 - 홍해리(洪海里)

    

  1

대지모신大地母神의 품 안

토양산성土壤酸性의 이랑마다

늦가을 햇살만 기운 채 빗기고 있었다


가랑잎을 갉아 먹으며

산자락을 휘돌아 온

앙상한 뼈바람이

풋풋한 흙 속의 한 알 보리를 흔들어

잠을 깨우고 있었다


다섯 뿌리 하얀 종자근이

발을 뻗어 내리는 속도 따라

햇살은 점점 기울어져

조금씩 모신母神의 품으로 내리고 있었다

 


  2


두견새 목청 트이는

동지섣달

칠흑빛 어둠을 뚫고

겨울을 털어 내리는

하얀 눈은 내려 쌓이고,

깃털, 꽃머리, 비늘잎도 모두

밑둥 마디에 묻어두고

한 치 땅 속에서 언 발을 호호 부는 소리


아직은 잠결,

유년 시절 고호의 손가락 같은

하얀 이파리들

골로만 모여 쌓여 있는

바람의 넋을 불러내어,

들뜨는 팔다리를 눌러 앉히며

미루나무 물오를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3


손톱 같은 달이

모과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부황이 든 얼굴

부러진 팔과 다리가 규폭마다 일어서고 있었다


짝 잃은 신발 한 짝

지난겨울 아이들이 놓치고 간

연줄을 잡고 있었다

잠깨어 목마른 아우성에

강도 마르고

불처럼 이는 함성


새벽 새의 울음소리

신선한 벌판

3월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4


어디선가

종달새 노래가 밝게 쌓이고 있었다


하늘의 시녀들이 부르는 노래 -----


몸뚱어리도 질박한 처녀처럼

뒹굴어도

껴안고 뒹굴어도

물들지 않을 바다

때깔 곱게 익고 있었다


밭 둑 미루나무

물이 올라

이파리마다 눈이 부신 정오

바람에 옆구릴 간질린

나비 한 마리

부산히 하늘을 털어 내리고 있었다


 

  5


햇볕이

땡땡땡 울고 있었다


대창을 든 병사들처럼

갈구리 까락을 받쳐 들고

아이들이

그을음 없이 타는 유화油畵,

황금벌판을 파도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미친 듯한 반 고호의 自由

넓은 밭마다 가득 차고

한켠으론

황토黃土ㅅ빛 고개가 보였다

반만년 오른 고개가 보였다

찌르륵 찌륵,

여치가 한낮을 걸르고 있었다.

            (시집『花史記』1975)

 



* 김창집 선생의 블로그(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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