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비밀』2010

<시> 조로 또는 조루

洪 海 里 2010. 2. 7. 17:55

 

조로 또는 조루

 

 洪 海 里

 

 

가을이 오기도 전

매화나무 이파리들

비울 것 다 비웠다는 듯

말없이 숨을 놓고 떨어져 내린다

가지마다 조롱조롱 기르던 숱한 자식들

일찍 빼앗긴 한이 깊어

스스로 몸을 세우지 못했으니

나무도 조로인가 조루인가

어차피 조로早老 조로朝露 매한가지

그러니 조루가 될 수밖에야

허공을 흔들며 노란 이파리 하나

온몸이 날개 되어 사뿐 내려앉는다

풀벌레 소리에도 한 잎 떨어지고

직박구리 날아와 조잘거리자

또 한 잎, 빙그르르 떨어져 내린다

종이처럼 얇은 미라가 마당에 누워

한낮이면 바스락바스락 몸을 뒤척인다

절정을 지나 떨림이 멎은,

열반은 우주의 중심에 자리잡은

고요한 안식.

 

  

 - 시집『비밀』(2010,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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