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 또는 조루
洪 海 里
가을이 오기도 전
매화나무 이파리들
비울 것 다 비웠다는 듯
말없이 숨을 놓고 떨어져 내린다
가지마다 조롱조롱 기르던 숱한 자식들
일찍 빼앗긴 한이 깊어
스스로 몸을 세우지 못했으니
나무도 조로인가 조루인가
어차피 조로早老나 조로朝露나 매한가지
그러니 조루가 될 수밖에야
허공을 흔들며 노란 이파리 하나
온몸이 날개 되어 사뿐 내려앉는다
풀벌레 소리에도 한 잎 떨어지고
직박구리 날아와 조잘거리자
또 한 잎, 빙그르르 떨어져 내린다
종이처럼 얇은 미라가 마당에 누워
한낮이면 바스락바스락 몸을 뒤척인다
절정을 지나 떨림이 멎은,
열반은 우주의 중심에 자리잡은
고요한 안식.
- 시집『비밀』(2010, 우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