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여자
洪 海 里
늘 줄 줄밖에 몰라 금방 거덜나고 마는
열화가 가득 차 있는 투명한 물화산인 나
사내들이란 하는 수 없는 작자들이어서
내 몸을 으스러지게 움켜잡고
뜨겁게 달아오른 입술을 들이대곤 하지
내 생각만 해도 불끈불끈 일어선다고
날 만나면 별수없이 나발을 불게 된다고
이내 고래가 되어 아귀餓鬼처럼 웃지
싸늘한 내 입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는
부산이 아니라도 사내들은 부산스럽고
잔마다 말들이 뜨거워 불꽃이 튀지
나를 만나면 사내들은 눌러듣지 못하고
술발이 오른다고 술이 받는다고 쎈 척하나
오르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사내들은 스스로 불이 되어 이내 타오르고
술잔에 붉은 얼굴이 욜랑욜랑거리다
휴지조각처럼 몸뚱어리가 무너지고 말지
숯검정이 된 그들 곁에 널브러진 나
내 속에서 생生도 절로 저물어 꺼져가고
밥이 눌 듯 누렇게 부은 얼굴이 되어
시계도 취해서 시간은 언제나 죽어 있지
무정 세월과 풍진 세상을 울고 있는
가뭇없이 풍경이 되어버린 나
목마른 파도처럼 꺼이꺽꺽 울고 있을 때
스산한 그리움만 속절없이 상처로 남아
드디어 박살이 나 자유를 얻는 나,
푸른 소주병.
- 시집『비밀』(2010,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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