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비밀』의 짧은 시 20편>
막막
洪 海 里
나의 말이 너무 작아
너를 그리는 마음 다 실을 수 없어
빈 말 소리없이 너를 향해 가는 길
눈이 석 자나 쌓였다.
5월
무슨 한이 그리 깊어 품을 닫는지
그리움만 파도처럼 터져 나오고
밀려오는 초록 물결 어쩌지 못해
임자 없는 사랑 하나 업어 오겠네.
만추
늙은 호박덩이만한 그리움 하나
입 다물고 귀도 접고 다 잠든 밤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의 빗소리
구진구진 홀로서 따루는 국화주.
나의 詩는
북소리 한 자락 베지 못하는
녹슬어 무딘 칼, 이 빠진 칼
그 옆에 놓여 있는
네 마음 한 자락 베지 못하는.
그물
어떤 자는
던지고,
어떤 이는
걸리고,
어떤 놈은
빠져나가는,
세상이라는
허방.
명창名唱
귀가 절벽이 될 때까지
목이 먹빛이 될 때까지
내가 폭포가 될 때까지
네가 칠흑이 될 때까지.
수세미
전생에 무슨 한이 그리 엮여서
한평생 몸속에 그물만 짜셨을까
베틀 위의 어머니,
북 주고
바디 치던
마디 굵은 손
나,
눈에 는개 내린다.
찰나
도화桃花 그늘에 앉아
술 한잔 하고 나니,
녹수청산綠水靑山 어디 가고
홍엽紅葉이 만산滿山,
찬서리 내리고
백설白雪만 펄펄 분분紛紛하네.
그리운 지옥 · 봄
서방님! 하는 아주 고전적인 호칭으로
산문에 들어서는 발목을 잡아 세워서
삼각산 바람소린가 했더니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꽃 속의 부처님만 빙긋이 웃고 있네.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새가 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새는 시간 속을 앞으로 날아간다.
때로는 오르내리기도 하면서~~~.
날개는 뒤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신은 새에게,
뒤로 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속절
'한 삭朔만 같이 살자'
아니
'한 주週만'
아니
'하루만'
해도
웃기만 하던
꽃
모르는 새 다 지고 말았다
절도 속절인데
그래도
속절없다.
사랑에게
써레질을 잘 해 놓은 무논처럼
논둑 옆에 기고 있는 벌금자리처럼
벌금자리 꽃이 품고 있는 이슬처럼
이슬 속 천년의 그 자리 그냥 그대로.
사랑
번개 치고
천둥 울고
벼락 때리는
국지성
집중 호우,
또는
회오리바람.
꽃에게
아프다는 말 하지 마라.
그 말 들으면,
나도 아파 눈물이 진다.
아슬아슬
천 길
낭떠러지
보일락말락,
이파리
한 장으로 가린
꽃.
자벌레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반성
네 예쁜 얼굴 너무 많이 봤구나
네 아름다운 목소리 너무 오래 들었구나
네 고운 마음 너무 자주 훔쳐 왔구나
네 고요 속에 너무 깊게 머물렀구나
아직도 깰 줄 모르는 나의 어리석은 꿈!
콩새야
콩새야
콩새야
느릅나무에 앉아만 있지 말고
콩밭에 가서 놀아라
겨울이 오기 전에
작두콩이나 한 알 물어 오너라
칼이나 하나 차고 오너라.
눈
누가 뜰에 와서 들창을 밝히는가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마음만 설레고 있는
홀로 환한 이승의 한 순간.
귀향歸鄕
어제는 세이천洗耳泉에 올라 귀를 주었다
오늘은 세심천洗心泉에 가서 마음을 씻고
내일은 우이천牛耳川을 타고 고향에 가서
맑은 고을 무심천無心川에 마음을 띄운다.
* 세이천과 세심천 : 우이동에 있는 약수터
우이천 :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내
무심천 : 청주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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