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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냉이와 씀바귀 / 봄동과 달래

洪 海 里 2011. 3. 4. 06:27

<윤덕노의 음식 이야기>

 

12. 냉이와 씀바귀

 

밥상에서 봄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는 봄나물이다. 그중에서 대표주자는 역시 달래, 냉이, 씀바귀다.

새콤달콤한 달래무침, 밥에다 썩썩 비비는 달래간장, 한 숟가락 떠먹으면 입안에 봄 향기가 가득 퍼지는 냉잇국에 쌉쌀한 맛이 식욕을 자극하는 씀바귀나물까지 떠올리면 벌써 입에 군침이 돈다. 사람들은 그래서 봄나물을 가리켜 아예 보약이라고 했다.

‘산채는 일렀으니 봄나물 캐어먹세/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조선시대 ‘농가월령가’ 중에서 2월 노래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도 봄나물을 캐는 것이 아니라 ‘본초강목’ 같은 의학서에 있는 약재를 캐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우리 의학책인 ‘동의보감’에도 씀바귀와 냉이는 약재로 올라있다.

‘동의보감’에 씀바귀는 성질이 차고 맛이 쓴데 몸의 열기를 없애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킨다고 했다. 심신을 편하게 하며 춘곤증을 물리쳐 노곤한 봄철에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것이다. 반면에 냉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피를 잘 돌게 해서 간에 좋고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냉이와 씀바귀는 이렇게 성질이 정반대로 옛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둘을 서로 대비되는 봄나물로 꼽았다. 냉이는 군자로 씀바귀는 소인으로 비유했고, 냉이를 지조와 학문의 표상으로 삼은 반면 씀바귀로는 실연의 아픔을 그렸다.

‘시경(詩經)’에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했나, 달기가 냉이와 같다’는 노래가 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옛 정을 그리워하면서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버림받은 자신의 고통이 씀바귀보다도 더 쓰다는 뜻이다.
‘시경’의 시대적 배경이 기원전 7세기 무렵인데 실연의 아픔을 왜 하필이면 냉이와 씀바귀에 비유했는지 지금 시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주로 먹는 봄나물이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변계량도 씀바귀를 구박하는 시를 썼는데 ‘황당한 글 가지고 책 끝에 쓰려 하니/씀바귀가 채소에 섞인 것 같아 부끄럽구나’라고 읊었다.

자신의 글을 낮추면서 씀바귀에 비유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씀바귀 구박의 압권은 한자에 보인다. 씀바귀는 한자로 도(도)라고 쓴다. 풀 초(草)와 나머지 여(余)자로 이뤄진 글자다. 그러니까 나물 중에서 좋은 것은 다 고르고 남아있는 여분의 나물이라는 의미다.

막상 먹을 때는 씀바귀의 쓴맛이 몸에 좋다고 칭찬하면서 비유를 할 때는 기껏 실연의 아픔을 상징하거나 버리기 직전의 나물이라고 ‘뒷담화’를 한다.

반면 냉이에 대해서는 칭찬 일색이다.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냉이는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조화롭게 한다며 송나라 때 채원정은 냉이를 먹고 높은 학문의 경지를 이뤘다고 했다.

역사책인 ‘송사(宋史)’에 나오는 이야기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채원정이 냉이를 씹어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래가며 학문을 닦은 후 주자를 찾아가 제자로 삼아줄 것을 청했다. 그의 학문을 시험한 주자가 “이 사람은 나의 벗이지 제자의 반열에 둘 수 없다”고 말하며 곁에 두고 수시로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냉이와 씀바귀에 담긴 뜻을 새기며 새봄을 맞이하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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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이맛!>

 

봄 내음에 입맛도 기지개 " 봄맞이 가자"

 

봄동 냉이 달래

 

‘봄동아,/볼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어쩌면 네 몸 이리 향기로우냐!/오랜만에 팔소매 걷고 밥상 당겨 앉아/밥 한 공기 금세 뚝딱 해치운다만/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봄의 몸을 받지 못한 나는 구린내만 가득하여/너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황상순 ‘봄동아, 봄똥아’에서>

봄동은 ‘봄의 똥’인가? 그렇다. ‘봄 강아지가 쪼르르 길가다가 눈 똥’이다. 금방 눈 연둣빛 강아지똥이다. 겨우내 한뎃잠을 잔 ‘노숙 배추’를 그렇게 부른다. 어떤 배추든 노지(露地)에서 추운 겨울을 나면 모두 봄동이다.

봄동은 원래 겨울눈밭에 내팽겨진 배추다. 가을배추를 거두고 남은 무녀리배추 뿌리에서 싹이 나와 자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겨우내 사람들 입맛이 ‘군내’에 찌들 때쯤, 한순간 열광적으로 러브 콜을 받는다. 문득 풋것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너도나도 봄동을 찾는다. 요즘 시장에 나온 봄동은 아예 9월 말이나 10월 초쯤 김장배추 씨앗을 뿌려 겨우내 키운 것이다. 전남 진도 완도 해남 일대가 그 주생산지이다.

봄동은 늦가을 찬 서리와 겨우내 눈발을 뒤집어쓴 채 보낸다. 얼었다 녹았다 온몸이 녹작지근 풀어진다. 잎이 옆으로 펑퍼짐하게 벌어진다. 넉장거리로 땅에 바짝 누워 ‘나 잡아먹어라’며 헤프게 웃는다. 속이 꽉 차지 않아 영 볼품이 없다. 그나마 계란 프라이처럼 가운데가 노랗다는 게 다행이랄까.

봄동엔 된서리 한 줌, 함박눈 한 줌, 칼바람 한 줌, 살얼음 한 줌이 각각 들어 있다. 성질이 차서 열 많은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 아삭아삭!” 사과 먹는 소리가 난다. 혀끝이 파르르 떨린다. 새콤하고 풋풋하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상큼한 향이 새록새록 나온다. 물기가 많고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

봄동 겉절이의 레시피는 간단하다. 양념장으로 봄동을 살살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양념장은 참기름, 참깨, 매실액, 멸치액젓,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다. 봄동 된장무침은 일단 봄동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야 한다. 봄동 줄기는 약간 긴 시간, 잎은 조금 짧은 시간 따로따로 데친다. 데친 봄동은 찬물에 한 번 헹군 뒤, 손으로 살짝 물기를 짜낸다. 그 다음엔 깨소금, 된장, 매실액, 대파, 마늘 등의 양념장으로 조물조물 뚝딱 무쳐내면 끝이다. 들큼하고 구수하다. 김 펄펄 나는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온몸의 실핏줄이 달뜬다. 듬뿍 들어 있는 비타민 C와 칼슘은 덤이다.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된장 풀어 국 끓인 날/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허기진 지아비 앞에/더 떠서 밀어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김승해 ‘냉이의 꽃말’에서>
냉이(나숭개, 나싱개, 나생이)는 땅이 덜 풀렸을 때 나오는 풀이다. 억세다. 흙 틈새가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안간힘을 다해 여린 싹을 드밀어 올린다. 우우우 용을 쓰며 올라온다. 그 힘은 질긴 뿌리에서 나온다. 무수한 실뿌리가 우산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다. 얼부푼 흙의 논두렁이나 밭두렁, 땅이 버슬버슬 바스러지는 양지바른 비탈에서 잘 자란다.

냉이 뿌리엔 흙냄새가 물씬 스며 있다. 가늘고 긴 뿌리엔 온갖 무기질 냄새가 배어 있다. 흠흠하고 달큰하고 삽삽하다. 냉이는 단백질과 당분은 시금치의 2배, 칼슘은 3배나 된다. 간에 좋다. 술꾼들 속 푸는 데 안성맞춤이다. 된장과 궁합이 딱 맞는다. 된장국에 냉이 몇 뿌리만 넣어도 온 집안에 봄 냄새가 그득하다. 된장 푼 멸치육수에 냉이 몇 줌과 바지락 넣어 뽀글뽀글 끓여내면 속이 시원하다. 냉이는 비타민C도 풍부하다. 쑥이나 달래보다도 많다. 살짝 데친 뒤 소금과 들기름으로 무쳐 먹어도 맛있다.

달래(달룽개)는 ‘작은 마늘(소산·小蒜)’이다. ‘들에서 나는 마늘(야산·野蒜)’이라고도 부른다. 매콤하고 쌉싸래하다. 알큰한 ‘작은 마늘’이다. 달래 먹고 맴맴, 코를 톡 쏜다. 감기로 코가 막혔을 때, 달래를 날로 무쳐 먹으면 콧속이 뻥 뚫린다. 비닐하우스 달래는 맵싸한 맛이 덜하다. 역시 들에서 캔 달래가 최고다.

달래는 논두렁 밭두렁에 많다. 호미나 긴 칼로 캔다. 쑥처럼 뜯지 않는다. 어설프게 뜯다간 줄기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알뿌리는 구경도 못하게 된다. 푸석하게 부푼 달래 주변 흙에 호미나 칼날을 조심스럽게 박아 떠올려야 한다. 하얗고 미끈한 알뿌리가 ‘짠∼’ 하고 나타난다. 젖먹이들 잇몸에 우우 돋는 이 같다. 눈이 부시다. 앙증맞고 예쁘다. 햐아, 한겨울 언 땅에서 어떻게 저런 백옥 같은 알뿌리를 키웠을까.

달래는 비타민C와 칼슘이 많다. 조선양념간장에 넣어 날로 먹는 ‘달래간장’이 으뜸이다. 최고다. 기운 약한 사람은 달래를 먹으면 에너지가 솟는다. 어질어질 빈혈 예방에도 좋다. 두부, 팽이버섯과 함께 바글바글 된장찌개를 끓여도 감칠맛이 난다. 달래는 따뜻하다. 열 많은 사람에겐 안 맞는다. 봄나물은 ‘바로 뜯거나 캐서, 바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봄동이나 달래는 더욱 그렇다.

입맛이 헛헛하다. 입안이 텁텁하다. 혓바닥에서 자꾸만 군내가 난다. 두툼한 겨울잠바에선 고릿한 냄새가 풍긴다. 집안 곳곳에서도 떠름한 냄새가 저려 있다. 메주 뜨는 냄새, 시래기 곰삭는 냄새, 간간한 간장게장 냄새, 곤곤한 곰국냄새, 시큼한 막걸리 식초냄새, 비릿한 생선 굽는 냄새….

파릇파릇 새봄이 돋는다. 시나브로 단침이 괸다. 온몸이 달뜬다. 저 들판의 풋것들에게 스르르 무장 해제된다. 그렇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은 혁명을 하건 말건, 오늘은 동무들과 봄나물 안주로 막걸리나 한잔해야겠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시냇가에 앉아서 다리도 쉬고/버들피리 만들어 불면서 가자/꾀꼬리도 산에서 노래 부르네’

<김태오 작사, 박태현 작곡 동요 ‘봄맞이 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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