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인론> 무교동의 클리토리스 / 안수길

洪 海 里 2011. 3. 8. 19:14

 

<작가가 쓴 시인론>

 

武橋洞의 클리토리스

 

                         安 秀 吉

 

  洪 海 里.

  그는 말이 적은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한밤중, 처마 낮은 집들 사이로 가만히 내려앉는 안개처럼 조용하고 치밀하면서도 무게를 느끼지 않는 특이한 음색을 지닌 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탁 풀어놓게 한다.

  백칠십 센티미터에 불과한 내 키보다도 작고, 백칠십오 센티미터쯤의 신장을 가진 이무원 시인보다는 더욱 작은 短軀의 홍해리. 그러나 걸으면서 흔들고 가는 공간은 그 주변의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넓다.

  약간은 찍어 눌린 듯한 양어깨를 좌우로 흔들면서 하퇴下腿를 유난히 높게 꺾어 들며 걷는 그의 특이한 보행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시 그의 몸에 배어 있는 체취가 外皮를 벗겨낸 나프탈린처럼, 주변의 공간으로 짙게 풍겨나는 탓인 것이다.

  지금은 덧없이 벗겨져 황폐해진 이마의 약점을 벌충하려는 듯, 늘어져 더풀거리는 뒷머리는 주변으로 넓게 번져나는 그의 체취와 함께, 그의 풍모를 어쩔 수 없는 시인으로 낙착지우게 한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아마 1970년 가을쯤이 될 것이다.

  시골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내게로 날려 보낸 그의 엽서 한 장이 그와의 첫 인연이 시작된 셈인데, 그때까지 나는 홍해리란 그의 이름 석자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되던 초기의 주간잡지에 색다른 사연과 함께 실려 있던 그의 시 <보리밭>을 읽고 기억했던 그의 이름 洪海里. 그러나 그것은 그의 본명은 아니었다.

 

………

두견새 목청 틔이는

冬至 섣달

칠흑빛 어둠을 뚫고

겨울을 털어내리는

하얀 눈은 내려 쌓이고,

깃털, 꽃머리, 비늘잎도 모두

밑둥마디에 묻어두고

한 치 땅 속에서 언 발을 호호 부는 소리.

     ㅡ「보리밭」의 一部

 

  나로서는 처음으로 접한 그의 시였던 셈인데 나는 거기서 상당히 빠른 속도감과 함께, 박두진의 <해>에서와 같은 생기발랄하고 박력있는 <리듬>을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두견새 목청 틔이는

동지섣달.

칠흑빛 어둠을 뚫고

겨울을 털어내리는

………

 

  소재는 분명히 한국적이고 恨이 서린 그런 것인데, 거기서 울려 나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한 곳 처지거나 늘어진 데 없이 호흡과 일치하는 생동하는 가락을 담고 있었다.

시를 읽고, 엽서를 받고, 내 머리 속에 남겨졌던 그의 인상은 조금쯤 부지런하고 고집이 세고 남보다 많이 지껄이고 싶어 하면서도 흙 냄새 나는 검고 질긴 피부를 가진 그런 사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난 자리에서의 그의 모습은 나의 예상 밖 저쪽에 있었다.

우선 해맑은 피부 색깔과 이목구비를 수용(?)하고 있는 얼굴 윤곽부터가 서구적인 데다가 남보다 일찍 길러 늘어트린 장발로 해서 더욱더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게다가 동인지《內陸文學》을 발기하기 위해 모임을 주도한 입장이면서도 누구보다도 과묵하였으므로 시골티를 덕지덕지 몸에 발라 묻히고 나갔던 나로서는 더욱더 그와의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시종 침묵을 지키면서, 긴장해 있던 내게 빈 술잔과 함께 그가 던진 첫 마디는 나를 퍽 안심하게 하였다.

 

'안 공(安公)하고는 좀 더 일찍 사귈 걸 그랬습니다.'

 

  반갑다는 소리는 물론, 초대면의 어떤 인사치레도 생략한 그의 이 한마디로 해서 <버터> 냄새가 나는 듯한 그의 서구적인 외모 때문에 느끼고 있던 이질감이 금방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후, 그와 나는 비교적 자주 만났었던 셈인데, 그 자리는 항상 그가 먼저 서둘러 마련하곤 하였다.

소설을 공부합네 하고 땀을 빼던 내가 시를 알 턱이 없었다. 그와 어울려 소줏잔을 비우며 주워 들은 몇 마디 귀동냥으로 그와 시를 함께 이해하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돗바늘로 묵첨을 찍어올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무렵 뒤늦게 서명도 없이 넘겨준 한 권 시집. 그것이 그의 첫 시집인 『投網圖』였는데 그 속에 담긴 시들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를 읽는 안목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외모와는 전혀 다른 순수한 土産品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터 바른 빵과 우유를 常食하며 자란 白人처럼 서구적인 풍모를 지닌 그가 질항아리 같고 더덕뿌리에 묵나물 같은 土産品 시를 엮어낸다는 것은 어딘가 잘못된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

물거품 말아 올려 구름 띄우고

바닷가운데 흔들리는 순금 한 말

가슴으로 속가슴으로

모가지를 매어달리는 빛살

천년 서라벌의 나뭇이파리.

     ㅡ「善花公主」의 一部

 

  연대로 보아 그의 詩作 초기에 해당할 이 <선화공주>는 金容浩 시인의 말대로 <옛 設話를 詩化하는데 성공>한 作品이면서도 표현과 구성면에서 특이한 기교를 보여 주었던 것 같다.

 

ㅡ바닷가운데 흔들리는 순금 한 말

 

ㅡ모가지를 매어달리는 빗살

 

  등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지극히 한국적인 <土産品 사랑>에 서린 한을 맑고 투명한 구슬알처럼 빚어 놓은 것이다.

이 시기에 그가 쓴 시편들에서는 자주 그런 경향, 즉 전통적인 질그릇에 새로운 유약을 칠해 놓은 듯한 인상을 받게 하였다.

<달처녀 엽서>, <인연>, <선덕여왕>, <개똥벌레 연가>, <別歌 · 二> 등의 題材에서 받는 인상이 전통적인 질그릇 같은 느낌이라면, 치밀하고 세심한 관찰과 고운 체로 걸러 낸, 선택된 어휘들의 조화는 맑고 투명한 花彩그릇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차창으로

아주 잠깐 내뵈인

그의 가느란 눈웃음.

     ㅡ「인연」

 

천년율동이던

항아릴 어루던 손

달밤의 목소릴 몰고 온다

     ㅡ「선덕여왕」

 

일곱 마디 가슴 가득

그대 그리워 불붙은 가슴

………

차라리 나뭇뿌리 아래

그대없이 칵 죽어 버릴까 봐요.

     ㅡ「개똥벌레 연가」

 

서럽도록

피 묻은 사랑을 알게 하시고

꽃 피어

진 다음

바람자리에

날아가는 꿈.

     ㅡ「別歌 · 二」

 

  길가 아무 곳에서나 뒹굴고 있는 막돌처럼 흔하고 평이한 어휘들뿐인데도, 그것들이 얽혀 이뤄진 詩句들은 하나같이 투명하고 맑은 유리빛으로 변하고 있음은 어휘의 철저한 선택과, 세심하고 치밀한 시인의 눈이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일단 시인의 눈에 잡힌 소재가 그대로 音聲化하지 않고 충분한 發酵과정을 거친 소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洪海里, 그는 이러한 초기의 詩作스타일에 安住하지 않고 끊임없는 詩語의 개발과 구사방법의 모색과 함께 소재의 전환을 위해서 상당한 고심을 했던 것 같다.

일종의 방황을 시작했던 셈인데, 그의 그런 방황은 그의 생활 터전이 서울로 옮겨진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어 상당 기간을 두고 가슴앓이 같은 중병을 치르게 했던 모양이다.

  언젠가 무교동의 어느 대폿집에서 매운 낙지안주를 씹으며 그가 실토한 말은 그런 그의 방황이 얼마나 심각했었던가를 짐작케 하였다

 

‘올해는 시 한 편, 글 한 줄 못 쓰고 지냈습니다’.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처럼 뱉어 놓은 그 말은 결국 매운 낙지안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젠가《詩文學》에 「新作特集」으로 너댓 편의 作品을 실어 놓고, 반 페이지쯤 되는 넓은 여백에다 <할 말 없음>이란 단 네 글자로 <詩作 노트>를 대신한 적이 있었다.

그 넉 자의 <詩作 노트>를 두고 주변 사람들의 해석은 상당히 구구했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은 변신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인 방황을 대변하는 고의적인 침묵이 아니었나 싶었었다.

  물론 1969년『投網圖』以後 詩作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가 초기의 韻律과 전통적인 土産品 소재를 幻想的으로 처리하면서도 평이한 日常語를 매끄럽게 다듬어내는 기교는 한층 세련되었지만, 자신의 내부에선 詩作태도의 변신을 위한 어떤 음모가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그는 엉뚱하게도 蘭에 심취하여 무시로 남서해안을 휘돌아 오는 採蘭記行을 하면서 난도 캐고 세상도 보는 새로운 눈을 떠 보려고 애를 썼다.

  언젠가 牛耳洞 그의 집에 들렀더니, 온 집안이 모두 蘭盆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시는 때려 치우고 蘭으로 덤벼들었군!’

 

  하고 쏘아붙인 나의 책망에 그는 작은 눈을 안경 속에서 껌뻑이며 대꾸했다.

 

‘詩좀 잘 써 보려고 蘭을 배우는 거요.’

 

  난을 기르고 감상하는 경지가 詩作의 경지에 못 미칠 리 없으니 내 딴엔 그럴 듯한 대꾸인 듯도 싶었다.

그는 과연 자신의 말대로 난을 가까이 하면서, 난과 함께 시작에도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 같았다.

「하눌타리」,「甫吉島」,「莞島一泊」,「風蘭」등 여행과 난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시를 얻으면서, 소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살냄새 나는 자기 목소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投網圖」와「善花公主」를 전후한 초기에 그가 눈뜬 전통적이고 환상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도시의 거리와 세상의 잡사에까지 눈을 돌린 것이다.

 

이승의 무수한 풀잎은

저마다의 重量으로

無限한 虛空을 흔들지만

무너지면서

담담한 강물같이

가슴으로 오는 憂愁

잠들어도 잠들지 못하는

三更의 般若

     ㅡ 「블랙 커피」의 끝부분

 

  시골 사람이 서울 가서 얻은 병 때문인가, 세상 잡사에 시달리며 잠 못 이루는 밤을 진한 커피 색깔처럼 노래했는가 하면,

 

느릅나무 이파리 사이

비수처럼 날아다니는

어둠과 허무를 어이하랴.

들길을 혼자 걷는 사내가

무엇을 가지고 눕는 풀을 노래하고

무엇으로 허무를 쓰러뜨리랴.

     ㅡ「포기연습抛棄練習

 

  不正과 非理가 난무하는 사회, 理性과 知性이 허약해져 가는, 그리고 점점 잔인해져 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시인이 느끼는 고독한 절망을 肉聲 그대로 외쳐보기도 했던 것이다.

<비수처럼 날아다니는/ 어둠과 허무>로 상징된 非情한 사회에서 휘어질 수도 버텨낼 수도 없는 시인 洪海里의 肉聲이 바로 <무엇을 가지고 눕는 풀을 노래하고/ 무엇으로 허무를 쓰러뜨리랴.>라는 탄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얼마간의 고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사귀는 데도 다소 편벽될 만큼 惡好를 분명히 하는 성미인 데다가. 한번 사귀기로 작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칼같이 구분해 놓고 사는 성격이니, 俗된(?) 사람들의 욕심을 위해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당시의 사회(1970年代 중반)가 그의 눈에 곱게 비쳤을 리 없고 마음 편할 리 없었던 것이다.

時代相이나 사회 현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연작시 <武橋洞>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 듯하다.

 

대한민국의 子宮

서울의 클리토리스.

………

벌거숭이 강철과 불빛이

미궁 속에서 암당하게 바스러지는

한 줌 꿈인 모래알들.

     ㅡ「武橋洞 · 15」

 

불타는 도시의 사지마다

흐물거리는 그림자와

둥둥 떠밀려 사라지는 철 이른 나뭇잎

방향 없는 폭풍우에 정처를 잃고

젖빛 유리창에 와 소리치는

금속성 발자국들의 해일

     ㅡ「武橋洞 · 11」

 

  <방향 없는 폭풍우에 정처를 잃은> 理想으로 해서 소외감을 느끼는 시인의 목소리가 보다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음을 본다.

난을 키우며, 난을 캐기 위해 산과 바다와 섬을 넘나들며 세상을 두루 보고 난 그가, 서울 복판에 다시 돌아와 새로운 눈으로 주변을 깨닫게 된 탓인지도 모른다.

전통에의 향수를 못 잊어 하던 초기의『投網圖』와『花史記』시대의 자연에서 눈을 돌린 그가 날이 잘 선 칼을 들고 精肉을 베어내듯 문명과 非情과 허무가 뒤엉켜 어지러운 시대를 해부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投網圖』시절의 생동하는 리듬과 평이한 일상어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는 그가, 앞으로 어떤 처방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詩의 묘미>를 보여줄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내가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눈이 전보다 넓고 깊어졌으며, 그의 붓이 옛날보다 날카롭고 그리고 독하게 날이 서 있다는 것뿐이다.

이전에도 역시 그래 왔지만, 만년 시골뜨기인 내가, 언젠가 다시 그 무섭고 복잡한 서울 거리에 발을 딛게 되면, 눈먼 장님 지팡이 찾듯, 그를 불러 낼 것이다.

그리고는 시와도 글과도 거리가 먼 얘기로 그를 보채며 괴롭게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대가 약한 내가 중년기를 맞은 지금도 남에게 의지하는 버릇은 여전하여 누군가에게 등을 기대지 않고는, 고향 밖으로 한 발짝 외출조차 하지 못하는 退行을 거듭하고 있다.

  말 한마디에 기백원이 드는 <DDD>를 어느 날 갑자기 걸어 놓고, 젖 떨어진 어린애처럼 불안한 얼굴로 서울에 내린 나는 강남 터미널의 그 어수선한 대합실에서 그의 허리끈을 잡고서야 다시 마음을 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볼일을 위해서 그가 이끄는 대로 서울 거리를 헤매게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내게 시간을 빼앗기고 술값을 빼앗기면서도 아직은 나를 멀리하려는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에나 한번 집착하기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고집 德을 단단히 보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그의 큰 장점이면서도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가 가진 난의 종류만큼, 그 주변의 몇몇 사람을 그는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 자신과 그가 좋아하는 몇몇 사람이 함께 사는 이 세상을, 이 시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가는 것을 가게 두고

오는 것을 오게 두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전신으로 덮이는 구름장

     ㅡ「武橋洞 · 9」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시대를 武橋洞의 한 귀퉁이에다 <오버 랩>시킨 것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며 <전신으로 덮이는 구름장>에 싸여 그는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는> 그것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날이 선 칼로 벌건 精肉을 베어내듯 날카롭게 붓을 갈아 <전신에 덮이는 구름장>을 베어내고, 그가 싫어하는 인간의 변덕과 文明의 차가움을, 그리고 이 시대, 못 사람들의 얼굴에 덮인 어둠을 벗기기 위해서 시를 쓸 것이다.

난을 키우며, 蘭香을 맡으며, 심신의 고달픔을 씻는 그는 몸 전체가 클리토리스처럼 예민한 신경세포가 되어 세상을 느끼며, 그것을 빚어 시를 쓸 것이다.

아직도 술에 취해 있는 그의 <武橋洞>이,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오 각성하여 바로 서게 되는 날은, 그는 또 한 번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변신을 꾀할는지 모른다.

그 때는 필경 무식한 내게 시집 한 권 차례 오기가 어렵겠지만, 기꺼이 나는 그 때를 기다릴 것이다.

  <洪海里 詩集> 한 권을 사기 위해서 팔도강산을 헤매더라고 내게는, 아니 그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기쁨일 테니까.

 

                - 시선집『洪海里詩選』(탐구당, 1983)

 

 

* 처음 '武橋洞'이란 시를 발표할 때는 '武'자는 바로세우고 '橋'자는 옆으로 뉘어놓고 '洞'자는 꺼꾸로 세웠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