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 수련睡蓮 그늘 / 감상 : 이동훈 시인

洪 海 里 2011. 3. 14. 21:26

 

 

수련睡蓮 그늘

 

洪 海 里

 


수련이 물위에 드리우는 그늘이

천 길 물속 섬려한 하늘이라면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겠네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 아니겠느냐

그 속에 들어와 수련꽃 무릎베개 하고

푸르게 한잠 자고 싶지 않느냐

남실남실 잔물결에 나울거리는

천마天馬의 발자국들

수련잎에 눈물 하나 고여 있거든

그리움의 사리라 어림치거라

물속 암자에서 피워올리는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

무릎 꿇고 엎드려 귀 기울인다 한들

저 하얀 꽃의 속내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시름시름 속울음 시리게 삭아

물에 잠긴 하늘이 마냥 깊구나

물잠자리 한 마리 물탑 쌓고 날아오르거든

네 마음 이랑이랑 빗장 지르고

천마 한 마리 가슴속에 품어 두어라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

                        - 월간《우리詩》2011. 1월호


 

 

- 수련, 수련 그늘, 수련잎을 넘나드는 시인의 연주는 물탑을 세우는 일처럼 박력이 있으면서도 그 물탑이

잔상만 남기고 금방 사라질 것 같은 애잔한 느낌도 준다.

  수련 그늘은 수련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으니 그늘은 일차적으로 존재의 배경이 되고 존재를 환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후 존재와 상관없이 생명력을 얻은 그늘은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하늘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깊어지는 일이 그러하다. 수련잎도 그늘에 닿아 있으며 시에서 보이는 화자의 위상도 그늘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늘이 커질수록 공허해지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애초의 오롯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이다. 참하게 앉은 수련은 더없이 이끌리는 존재일 것이다.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연인처럼,

아무리 애써도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진리처럼 품고 싶은 것은 언제나 한 발 먼 곳에 있다.

  산이 높으면 그늘도 깊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높아야 깊어지는 걸까. 그 구도의 길에서 그늘은 그늘로

자족하기도 하고 그늘이어서 서운하기도 하다. 그늘이 그늘을 고민하고, 그늘이 그늘을 지우는 꿈은 천마로

상징된다. 이 시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수련잎 모양새에서 천마의 발자국을 연상하고,

천마의 발자국에서 해인海印을 연결하는 자유자재한 상상력이 놀랍다.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지만 시인이 드리운 그늘도 그 못지않게 깊어서 자꾸 아득해진다.

                          - 이동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