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벼락치다 / 洪 海 里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시집『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
이 작품은 우선, '봄'을 '천길 낭떠러지'로 비유하고 있다. 약간 의외의 결합이다.
연을 달리하여 생각할 여지를 두었기에 독자들이 일단 이를 수용하고 상상력을 전개시켜나가면 그 다음부터는 거침이 없다.
즉, '낭떠러지'라는 보조관념을 투영해 보면 산자락마다 피어난 연분홍 꽃들은 '파르티잔'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산을 타고 오르는 '불'이기도 하다.
'역병이 창궐하듯 / 여북했으면 저리들'이겠는가.
그 봄이 밀어올린 극점에 '천길 낭떠러지'가 있었던 것이고, 거기에서 '벼락'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은 꽃들이 피어나는 소리의 합창이겠지만, 그에 감응하여 일어난 "내가 날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들은 그 봄 풍경 앞에서 또한 자기 자신과 맞딱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임수만(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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