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란寒蘭을 노래하다
-애란愛蘭
洪 海 里
한 해의 짐을 부릴 때쯤
헛헛한 가슴에
언뜻 솟아오르는 머언 소식
쓸어버리고 싶은
헐벗은 마음
차가운 바람에 날려보내고
해질녘 낯설고 막막한 거리
마음을 비우고 서면
아우성치듯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
외로움 모두 에워버리고
서러움 모두 씻어버리고
괴로움 모두 걷어버리고
그리움으로 가득히 차오르는
십리 밖 날라리 소리에
피어나는 한 폭 수채화.
- 시집『愛蘭』(1998)
* 한란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한란 곁에서
洪 海 里
한겨울 솔바람소리
기나긴 밤은 짙어가고
얼어붙은 어둠을 카알 칼 자르고 있을 때
초저녁에 지핀 군불도 사그러들어
눈 쌓이는 소리만
유난스레 온 산 가득 들녘에까지
무거이 겹칠 때
은일한 선비들 칠흑을 갈아
휘두르는 묵필
끝없이 밤은 깊어가고
끝내는 아픔이란 아픔마저
오히려 향그러이 저며들 때
눈 감아 뜬 눈으로 아픔을 몰고 오는
새벽녘 피리소리
짙푸른 칼날.
- 『우리들의 말』(1977)
한란寒蘭
洪 海 里
그녀는 혼자다
늘 호젓하다
소나무 아래서나
창가에서나
달밤엔 비수
그 푸른 가슴
창 안에 어리는 별빛
모두어 놓고
그녀는 호젓하다
늘 혼자다.
- 시집『淸別』(1989)
제주한란
洪 海 里
기다려도 기다려도
발자국 소리 오지 않더니
가을 들어
가장 맑은 날 밤을 골라
첫서리 내리자
드디어 네가 날개를 펴
암향을 천지사방으로 흘리며
아름다운 덫을 놓고 있다
연보라빛 깊은 화옥花獄을 쌓아
골짜기마다 처음으로 길이 트이고
마을이 화안하다 못해 향그럽다
영원이 거기 있어 나를 열고 있는가
이미 꽃은 꽃이 아닌 꽃이 되어
입술이 젖어 있고
제주바다가 눈썹 위에 잔잔하다
안과 밖이 공존하는
있음과 없음이 함께하는
너의 중심으로
나의 모든 길이 향하고 있다
네 주위에 와 노는 한라산 바람
연보라빛으로
무위의 춤을 엮나니
정중동靜中動이요 동중정動中靜
화심세계花心世界로다.
- 시집『愛蘭』(1998)
한란의 말
洪 海 里
비단 바지 저고리 밤도와 지었어라
새벽녘에 일어나 이슬 고루 맞추어
해 돋기 전 정성 다해 다림질하여
찬바람 불어 흰 이슬 내리는 날
그대 발 아래 고이 보내드리오니
쪽빛 하늘 산들바람 타고 오소서
님이여, 이슬 안개로 날아 오소서.
- 시집『愛蘭』(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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