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일보/ 2011. 12. 8. (목)
詩가 있는 풍경
우화羽化
洪 海 里
바닥을 본 사람은
그곳이 하늘임을 안다
위를 올려다보고
일어서기 위해 발을 딛는 사람은
하늘이 눈물겨운 벽이라는 것을
마지막 날아오를 허공임을, 알고
내던져진 자리에서
젖은 몸으로
바닥을 바닥바닥 긁다 보면
드디어,
바닥은 날개가 되어 하늘을 친다
바닥이 곧 하늘이다.
◆시 읽기◆
잎을 갉아먹고 만들어 낸 진액으로 도롱이를 말아 쓰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겨울나기를 한 애벌레는 따듯한 봄날에도 열심히 바닥을 기어야 나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올라가야 하고 내려서야 하는 지점을 아는 것, 바닥과 하늘의 경계지점 또한
자신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으며, 삶의 한 대목마다 최선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일어서기 위해 발을 딛는 사람은 하늘이 눈물겨운 벽이라는 것을, 마지막 날
아오를 허공임을 알고, 내던져진 자리에서 젖은 몸으로 바닥을 바닥바닥 긁어
본 사람만이 바닥이 곧 하늘이란 것을 안다는 말이다.
번데기가 변태하여 성충(成蟲)이 되고, 하늘을 날기 위한 날개를 얻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쳐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진정한 자각, 순수한 각성, 즉 awareness에 있는 것이 아닐까?
탈지면(脫脂綿)처럼 정제(整齊)된 시를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 쉬운 시가 아니다. 홍해리 선생님의 이 바닥을 기어기어, 누가 침을 뱉든, 발로 차든 망설임없이 자신의 길을 한없이 꿈틀거리며 가다가다 얻어낸 시 <우화羽化>는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얻어낸 정신의 엑기스다. 어둠속에 들어앉아 자신의 거울 속에 들어가 직접 자신과 대면하지 않고는 얻어낼 수 없는 각성이다.
우화가 생각난다. 모든 애벌레들이 어디인지도 목적도 없이 몰려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절망의 추락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땅바닥을 기어가며 살다 번데기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영혼까지를 죽임으로써 나비로 부활한다는,..!!
오랜 자기침잠을 통해 고집스럽게 얻어지는 예술과 철학보다는 대중적 즉흥적 반응에 즉흥적 대처에만 급급해지는 현대인들, 젊은이들, 특히 테크닉에 연연해 하는 일부 시인들에게도 홍해리 선생님의 이 시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김 금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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