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스크랩] 덕성시원 야외수업

洪 海 里 2011. 8. 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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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학기 개강을 앞두고 적조했던 덕성시원 문우들이 모여서 2011. 8.19. 금요일 우이동 북한산 끝자락 녹음 우거진 숲 그늘에서 임보 시인과 홍해리 시인의 특강을 아래와 같이 듣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보 시인의 <어찌할거나> <소동파의 적벽부> 낭창과 홍해리 시인의 춤사위는 일품, 그 문하생들은 감탄사를 연발하고 또 각자 끼를 발산하는 하루였다.

저 멀리 강원도에서 불편한 몸으로 헐레벌떡 달려오신 분, 오늘 신선놀음에 몸 가뿐하게 하고 지상낙원으로 되돌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1행시에 관하여

                                                                                  임보 시인

 

  시는 짧은 글이다. 물론 장시나 서사시와 같은 긴 분량의 시도 없는 바는 아니지만 이는 특수한 경우이고, 원래 시는 압축과 간결을 지향하는 글이므로 짧음이 그 특성의 하나이다. 그래서 산문형식의 시도 있기는 하지만 시는 대개 분행을 해서 간결하게 배열한다. 원래 정형시의 분행은 운율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지만 현대 자유시에서는 행의 분할이 의미, 이미지, 시각적 효과 등을 고려해서 자유스럽게 행해진다.

  따라서 행의 길이도 들쭉날쭉하다. 어떤 것은 수십 어절의 장행시가 있는가 하면 한 어절 혹은 한 음절이 한 행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 동안 한국 현대시에서도 짧은 시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다. 단형시의 보편적 구조는 네 마디(곧 4행시)가 주도를 해 왔다.

  그러나 3행시, 2행시, 1행시 등 다양한 작품들이 없었던 바 아니었다. 박희진은 1행시집을 간행한 바 있고, 성찬경은 1자시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범대순은 ‘백지시’라는 극단적인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들과 더불어 정성수(丁成秀)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의 출현은 ‘단형시’를 논하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시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더욱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비음절시(부호시)’는 시단의 관심을 요하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짧은 시 형식 안에 담겨있는 ‘광활한 우주적 시상’도 주목할 만한 논의의 대상으로 보인다.

~~~~~~~~~~~~~~~~~~~~~~~~~~~~~~~~~~~~~~~~~~~~~~~~~~~~~~~~<박희진> 1행시 2권

17자 시 (일본 하이꾸) 「160」 비에 젖은 솔아 너도 눈물 솟는가 솔잎 끝 이슬

1행시 「2」 나무엔 꽃이 피는, 눈엔 눈물이 솟는 소리

1행시 「60」 백 가지 풀이 저마다 부처님 냄세를 뿜고 있다

<복효근>

「언뜻 신을 보다」 이 도토리 한 알이 저 참나무 숲의 자궁이었다니

<고은>

「별똥」 옳거니, 네가 나를 알아보누나!

<정성수>

「저 사막위의 하얀 낙타」 어머니!

「신의 포효」 침묵

「짧은 세상 길게 살기」 네!

「사람과 사람 사이」 옷

<홍해리>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뚝!

<임보>

「공기」 물질의 유령

「물」 생명의 씨 / 생명의 밭

<성찬경> 1자시 : 제목과 내용이 1 字만으로 이루어진 작품

「똥」

「흙」

~~~~~~~~~~~~~~~~~~~~~~~~~~~~~~~~~~~~~~~~~~~~~~~~~~~~주;

1)임보『운주천불』(우이동사람들, 2000.) p.134 해설문2)박희진『1행시 700수』(1997), 『1행시 960수와 17자시 730수, 기타』(시와진실, 2003.)

3)성찬경『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문학세계사, 2005.)에「똥」,「흙」등의 一字詩가 수록됨.

4)범대순은 1974년 『현대시학』에 시인의 이름만 적힌 ‘백지시’를 시도함.

5)월간문학 출판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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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아포리즘

시는 삶일 뿐이다

                                                             洪海里 시인

 

시는 봉숭아 꽃물 들인 그대의 새끼손가락 손톱 속에 내리

는 첫눈이다.

 

시는 희망이요 절망이다. 희망의 번개요 절망의 천둥이다.

그리하여 조화요 혼돈이고 혼돈이며 조화이다.

 

시는 눈내린 오솔길이다. 그 길 위에 찍혀 있는 한 사람의

발자국에 고여 있는 순수한 고요이다.

 

시는 울음이요 얼음이다. 웃음이요 차돌이다.

 

시는 갓 창호지를 바른 지창이요, 그곳에 은은히 어리는 따

수운 저녁 불빛이요, 도란도란 들리는 영혼의 울림이다.

 

시는 가슴에 내리던 비 그치고 멀리 눈밖으로 사라지는 우

렛소리이다.

 

시는 실연의 유서이다. 말로 다 못하고 남겨 놓은 싸늘한 삶

의 기록이다.

 

시는 흙이다. 검고 기름지고 부드럽고 따뜻한 흙의 가슴이

다.

 

시는 맑디맑은 눈빛이다. 핑그르르 도는 눈물이다. 그 눈물

이 오랫동안 익고 익어서 빚어진 보석이다. 눈물의 보석이다.

 

시는 연잎이나 토란잎에 구르는 영롱한 물방울이거나 풀잎

끝에 맺혀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이슬방울이다.

 

시는 화살이다. 막혀 있는 그대의 가슴에 피가 돌게 하는 금

빛 화살이다.

 

시는 푸른 소나무 바늘 사이를 빠져나온 바람이다. 순수의

강물 위에 흐르는 맑은 바람이다.

 

시는 만추에 피어나는 새싹의 파아란 볼이다. 늦가을을 다시

봄이게 하는.

 

시는 절집에 배달려 있는 뼈만 남은 물고기의 '잠을 깨라,

깨어 있어라'하는 뜨거운 외침이다.

 

시는 잠 속의 꿈이요 꿈속의 잠이다.

 

시는 깊은 산속 솟아오르는 충만한 옹달샘물이다.

 

시는 초록빛 춤을 추는 나무다. 그것은 이상과 휴식과 안정

과 평화를 가져다 준다.

 

시는 기다림이요, 그리움이다, 사랑이다, 늘 차지 않아 안타

까운 빈 잔이다.

 

시는 마지막 불꽃이다.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이다. 모든 것

을 다 태우고 다 타버린 것까지 다시 태우는 불꽃이다.

 

시는 상상력의 증폭기이다. 순간과 영원을 함께하고 극락과

지옥을 같이한다.

 

시는 사춘기의 꽃이다. 떨리는 가슴의 언어를 엮어 따스한

마음을 전해주는 대행기관이다.

 

시는 문학의 원자요 결정체이다. 모든 문자로 된 매체는 시

로 시작해서 시로 끝나야 한다.

 

시는 가장 정교하고 우아한 의상 전시장이다. 그 의상을 입

은 사람들은 스스로 빛이 난다.

 

 

시는 집중이다, 중심이다.

 

시는 첫눈이고 첫서리이고 첫얼음이다. 첫 성에이다. 그리하

여 첫사랑 같고 첫 키스 같고 첫날밤 같아야 한다.

 

시는 독주다. 사내들의 우울한 가슴을 태울 100%의 순도를

지닌 독주의 순수 ·투명함이다.

 

시는 우리 나라 비평가들의 밀가루 반죽이다.

 

시는 정신의 건전지이다. 피로한 정신의 기력을 채워주는 생

명공학이다.

 

시는 백담계곡의 맑고 찬물에 노니는 열목어의 붉은 눈빛이

다.

 

시는 언어의 사리이다. 자신을 태워 만드는 스스로의 사리이

다.

 

시는 사랑이다. 항상 막막하고 그리웁고 안타깝고 비어 있어

허전하고 늘 갈구하며 목말라 한다.

 

시는 똥이다. 잘 썩어 우리들의 영혼의 자양분이 되는 향기

로운 똥이다.

 

시는 미늘이다. 영혼의 탈출을 막는 날카로운 미늘이다.

 

시는 다이아몬드이다. 사람이 사는 빈 자리마다 푸르게 빛나

는 영롱한 보석이다.

 

시는 새벽녘에 갓 잡아올린 신선한 생선이다. 그 금빛 미늘

이다.

 

시는 삶이다. 삶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시는 삶일 뿐이다.

- 시집『愛蘭』(우이동사람들. 1998)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민문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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