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변잡기·洪錫珉 기자

와인, 맛집, 그리고 빅 데이터

洪 海 里 2012. 4. 3. 06:07

 

와인, 맛집, 그리고 빅 데이터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와인 분야에서 그의 혀가 아인슈타인의 두뇌와 같다고 하는 극찬에서, 획일적인 와인 맛을 전파하는 악의 축이라는 비난까지 극명하게 엇갈린다.

  변호사였던 파커가 와인업계에서 영향력을 얻고 동시에 안티 세력을 양산하게 된 것은 100점 평가 체계의 영향이 컸다. 그 복잡하다는 와인에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공개하는 것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와인의 미로에서 헤매는 와인 입문자에게 파커의 점수는 훌륭한 길잡이다.

  하지만 와인 이력이 붙고 내공이 쌓이면 의문이 생긴다. 하루 20여 종의 와인을 맛보고, 지금까지 수십만 종의 와인을 평가했다고 하지만 왜 파커 점수에 이렇게 매달려야 하는가. 파커 점수에 대한 비판에는 맛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생각과 단 한 명의 평가에 의존해야 한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수많은 와인을 마신,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모두 합산해 점수를 매길 수는 없을까.


  빅 데이터 기술이 열쇠가 될 수 있다. 빅 데이터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기존 기술로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의 데이터를 의미한다. 인터넷에 이어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널리 퍼지면서 해석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데이터의 바다에서 의미를 이끌어 내고 의사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기술이다.

  와인 분야에서 빅 데이터를 이용한 평가 시스템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아직 못 들었다. 하지만 식당을 선택할 때 SNS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집계해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곧 등장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상반기에 상용화할 ‘보따리’가 주인공이다.

  보따리는 위성을 활용한 위치정보에 트위터나 미투데이, 블로그 등에 올라온 실시간 맛집 평가를 결합시킨 모델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나오는 지도에 현재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음식점을 표시하고 클릭하면 메뉴, 위치, 전화번호 같은 기본 정보와 함께 해당 음식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모아 보여준다.

  언제부턴가 모르는 식당에 가려면 인터넷을 뒤져 다른 사람의 평가를 살펴보는 게 일상화됐다. 하지만 인터넷 맛집 평가도 파커의 와인 평가와 마찬가지로 주관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파워 블로거 가운데 뒷돈을 받고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보따리는 해당 식당을 이용한 불특정 다수의 자발적인 평가를 집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신뢰도가 높다.

  데이터 분석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의 짐 그레이 박사는 데이터를 활용한 방법론을 자연 관찰, 이론적인 모델,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이은 과학의 ‘제4 패러다임’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빅 데이터 기술이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거창하게 그의 해석을 인용하지 않아도 밥 먹을 곳을 정하는 일상적인 선택의 순간까지 빅 데이터 기술이 활용된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약 일주일 뒤면 총선이고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기다린다. 선거의 중요성은 밥집 고르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 동아일보는 올해 선거를 빅 데이터 선거로 규정하고 SNS상의 정치 민심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여론조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평소 생각의 흐름까지 선택에 참고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동아일보 2012. 4. 3.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