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만찬 - 치매행致梅行 · 237

洪 海 里 2017. 6. 6. 16:17

 

만찬

 - 매행致梅行 · 237


洪 海 里

 


 

삶은 감자 한 알

달걀 한 개

애호박고추전 한 장

막걸리 한 병.

 

윤오월 초이레

우이동 골짜기

가물다 비 듣는 저녁답

홀로 채우는 잔.


* 여기 만찬은 시인 혼자만의 만찬입니다. 반찬의 가지 수가 세 가지나 됩니다. 삶은 감자와 달걀과 애호박고추전이 그것입니다. 거기에 막걸리 한 병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 만찬을 준비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만찬을 준비한 것은 이 시의 주인공 자신입니다. 이미 숙달이 되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홀로 먹는 만찬이니 수저도 하나입니다. 막걸리 한 병으로 보내는 시간. 누가 잔에 술을 부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잔에 부어 술을 마십니다. 이런 일상을 누구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깨우고 다짐해야 합니다. “내가 허물어져서는 안 된다.” 자신이 허물어지면 가정이 다 허물어진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심정으로 한 끼를 때워야 했을 겁니다. 때가 오월입니다. 녹음이 우거지는 우이동 골짜기. 온갖 기와요초가 생기를 되찾아 생명을 구가하는 때. 홀로 잔을 채우고 삶의 쓰디쓴 맛을 술로 달래는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가물다 비 듣는 저녁이 마음까지 촉촉이 적시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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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만찬|작성자 솔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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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감자와 달걀에 전이 놓였다면 막걸리 안주로는 어지간한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다.

만찬이어서, 함께 즐기는 손님은커녕 홀로 잔을 채우는 그만의 만찬이어서 애잔하다.

한 알, 한 개, 한 장이 막걸리 한 병의 초대라니.

 

  오랜 가뭄에 더는 견딜 수 없는 몸, 마른 골짜기 적시려고 혼자 잔을 채우는 이의 저녁은 쓸쓸하다.

오래 묵은 독작을 엿보다가 문득 방문을 열고 들어가 마음에 둔 잔을 꺼낸다.

    - 금 강.

 

  * 주어를 모두 생략해버린 위의 시는 그래서 그런지 시의 여백이 더 확장되어 보입니다. 아마도 화자, 즉 시인은 저녁 상 앞에 앉아서 상념에 잠긴 듯합니다. 평생 절제로 생을 경작해 오신 시인은 먹는 것 앞에서도 넘치는 법이 없습니다. 한 끼 양 만큼이 다 찼다 싶으면 수저를 가차 없이 놓아버리는 시인이지만, 그러나 곡주 앞에서는 하염없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시인의 정갈한 밥상이 우리들 앞에 차려졌습니다. 그것은 “삶은 감자 한 알/ 달걀 한 개/ 애호박고추전 한 장/ 막걸리 한 병.”으로 소박한 밥상입니다. 이것이면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시인은 오늘의 만찬 앞에서도 웬일인지 하염없습니다. 시의 장소는 “우이동 골짜기”로 평생 시인의 거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는 “윤오월 초이레” 시인은 일 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동안 줄곧 가물어서 “가물다 비 듣는 저녁답”으로 내심 안심이 되기도 하는 평화의 시간임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저녁 만찬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홀로 밥상과 마주 앉아서 “홀로 채우는 잔.”으로 윤오월 빗소리를 듣는 사내의 쓸쓸한 저녁답입니다 

 - 손현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