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눈사람 - 치매행致梅行 · 234

洪 海 里 2017. 5. 31. 05:05

눈사람

 - 치매행致梅行 · 234

 

洪 海 里

 

 

 

 

사랑은 눈사람

겨울 가고 봄이 오면,

 

슬그머니

목련 가지 끝에 앉아 있다.

 

연인들은

목이 말라 사막을 헤매지만,


겨울이 가고 나면

나뭇가지마다 꽃을 다는데,

 

아내의 나라에는 봄이 와도

내리 눈만 내려 쌓이고 있다.



* 사랑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세상을 만납니다.

모양을 바꾸고 자리도 고쳐 앉은 사랑은 늘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람에 꽁꽁 묶었던 시절 잠깐 떠오르지만, 새로 피운 꽃망울을 보고 금세 몸이 부풀어 오릅니다.

여기까지는 당신이 그 나라에 눕기 전 고백입니다. 함께 쓰고 함께 읽던 편지입니다.

 

  이제 나는 봄바람이 손끝 발끝 간질이는 날에도 속을 터뜨리지 못합니다.

무수한 사랑의 언어가 창에 걸려도 화답의 입술을 열지 못합니다.

심장이 불타올라도 마음을 숨기고 눈치 보며 살아야 합니다.

화답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눈은 녹겠지요. 꽃망울은 오르겠지요.

계절의 순환이 멈춘 나뭇가지는 꽃눈의 기억도 덮어버리고 맙니다.

     - 금 강.


  * 겨울 왕국에서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겨울 왕국 그곳은 세상천지가 눈에 덮이고, 사람들은 모두 눈사람으로 살아서, 꽁꽁 얼어붙어서 눈꽃만이 만발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색깔도 단순해져서 흰빛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아주 단순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제외만 다른 모든 세상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또 잎이 지는, 이상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그 행간에서 사람들은 새끼를 낳고 울고 웃고 밥을 벌고 사랑을 하면서 시간을 향유합니다. 그러나 겨울 왕국의 시간은 거기 그 지점부터 꽁꽁 얼어서 지나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무뚝뚝한 나라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마도 여기가 그곳인가 봅니다. 계절은 봄이 찾아온 것 같지만, 그러나 아내의 나라, 그 땅에서는 아직도 겨울 왕국 모든 사람들이 눈사람으로 살아서 변하는 것도 살아 움직이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아내의 나라에는 봄이 와도/ 내리 눈만 내려 쌓이고 있다.”는 슬픈 전갈만이 한 언어로 오시겠다는 것인가 봅니다   

  - 손현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