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에서

洪 海 里 2012. 7. 28. 07:58

  ⓒ 박정원_ 닭의장풀(달개비)

 

 

물의 외 6편

 

         홍해리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자리가 다 차면 주저 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방짜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려니,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며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한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갯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터리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엽서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벌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름다운 남루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 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이 막막한 봄날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아름답다.

 

 

 

 

 

 

 

淸別

 

 

창 밖에 동백꽃 빨갛게 피고

구진구진 젖고 있는 겨울비

꽃 속에서 젖은 여인이 걸어나오는

동짓달도 저무는 보길도 부둣가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

차 한잔 시켜놓고 바다를 본다

고산이 어부사시사를 낚던 바다

비 사이로 보이는 겨울바다

빗방울 하나에도 바다는 깨어지고

동백나무 아래서 작별하는 연인들

어떻게 헤어짐이 청별일까

예송리행 보길여객 미니버스

낮은 목소리로 경적을 토해내고

청별을 연습하는 나그네도

비와 함께 젖고 있는 겨울바다.

 

 

 

 

 

늘과 바람

 

 

  내게 허공이 생길 때마다 아내는 나의 빈자리를 용케도 찾아내어 그 자리마다 바늘을 하나씩 박아 놓습니다 한 개 한 개의 바늘이 천이 되고 만이 되어 가슴에 와 박힐 때마다 나는 신음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비인 들판을 달려 갑니다 동양의 모든 고뇌는 다 제 것인 양 가슴 쓰리며 하늘을 향하여 서른여섯 개의 바람을 날립니다 이제까지는 그 바람이 바람으로 끝이 나고 말았지마는 이제는 바람의 끝에서 빠알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새벽녘 아내의 아지랑이로 넘실대는 파도의 기슭마다 은빛 금빛 비늘을 반짝이는 고기 떼들이 무수히 무수히 하늘로 솟구쳐 오릅니다. 

 

- 홍해리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에서 (우리글, 2012)

가져온 곳 : 
카페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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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정원|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