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홍해리 시선집과 황근

洪 海 里 2012. 7. 20. 06:16

 

 

제7호 태풍 카눈이 훑고 간 하늘에 환한 태양이 비치길래

눅눅한 마음 달래려 마실 나갔다 오는 길가에 황근이 곱게 피어 여름 하늘을 장식한다.

그걸 찍어다 놓고 지난번에 두어 번 싣고 남겨 놓은 홍해리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의 시

8편을 골라 같이 싣는다.

 

황근黃槿은아욱과의 낙엽 활엽 반관목으로 높이는 1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원형 또는

넓은 달걀 모양이다. 7~8월에 노란색 꽃이 하나씩 잎겨드랑이에 피고 열매는 삭과로 가을에 익는다.

관상용이고 우리나라의 제주, 일본에 분포한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구좌읍과 성산읍 해안도로변에 자생한다.  

 

 

봄, 벼락치다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둥어리 문 열고 나오는 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람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아름다운 남루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 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이 막막한 봄날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아름답다. 

 

 

연지비익連枝比翼

   - 애란愛蘭

 

난을 사랑한다 함은

우주를 품어안음이니,

 

바위 깊이 수정 지주를 세우고

지상에 녹색 보석 궁전을 지어

반야般若의 길을 찾아 천릿길을 나서네

푸른 잎술에서 나는 향그런 풍경소리

깊숙이서 차오른 영혼의 노래

기다리다 기다리다

그리움에 목이 젖으면

떼기러기 띄우고 해와 달 엮어

기인 목 뽑아 눈물 같은 향 피우네

천지간에 사무치는 한넋으로

돌아보는 세상은

늘 저만치 비켜서 있고

차가운 불길 가슴을 태워,

 

그리고 그리는

연지비익連枝比翼이여!   

 

 

다짐

   - 애란愛蘭

 

적당히 게으르게

살자

하면서도,

네 앞에 오면

그게 아니고,

 

조금은 무심하게

살자

하면서도,

네 앞에 서면

그게 아니고.

 

 

지는 꽃을 보며

   - 애란愛蘭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서산에 해는 지고 밤이 밀려와

새들도 둥지 찾아 돌아가는데

가슴속 빈자리를 채울 길 없어

지는 꽃 바라보며 홀로 섰느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난초 한 촉

 

두륜산 골짜기 금강곡金剛谷으로

난초 찾아 천리길 달려갔다가

운선암雲仙庵에 하룻밤 몸을 포개니

기웃기웃 달빛이 창문을 때려

밖에 나와 숲속의 바람과 놀 때

잠 못 들던 사미니 내 귀를 잡네

물소리도 날아가다 엿보고 가고

난초蘭草꽃 깊은 골짝 암자 속에서

하늘 땅이 초록빛 독경을 하네.

 

 

투명한 슬픔

 

봄이 오면 남에게 보이는 일도 간지럽다

여윈 몸의 은빛 추억으로 피우는 바람

그 속에 깨어 있는 눈물의 애처로움이여

은백양나무 껍질 같은 햇살의 누런 욕망

땅이 웃는다 어눌하게 하늘도 따라 웃는다

버들강아지 솜털 종소리로 흐르는 세월

남쪽으로 어깨를 돌리고 투명하게 빛난다

봄날은 스스로 드러내는 상처도 아름답다.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