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 번역시

[스크랩] 가을 엽서 / 洪海里

洪 海 里 2012. 9. 18. 03:42

 

 
    가을 엽서 홍해리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별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 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출처 : 한밭대학교평생교육원 시낭송반
글쓴이 : 권교수 원글보기
메모 :

 

가을 엽서

 

 洪 海 里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별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 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 시집『푸른 느낌표!』(2006)


* 마침 책상 위에 놓여 있는 素心蘭이 꽃대 두 개를 올려 꽃을 피웠다.

  맑고 향기롭다.

   2012.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