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水路여 수로水路여
洪 海 里
하나. 자화상 또는 타화상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까지 오르고
바다 깊은 줄 모르고
바닷속까지
뭍 너른 줄 모르고
따끝까지
온몸에 불이 달아
싸돌던 여인
젊은이
늙은이
낮은 사내
높은 사내
제 서방
남의 서방
사내란 사내는 모두
수컷으로 만든
창녀중의 창녀
천사창녀여!
둘. 독백 또는 비원
나를 꺾어다오
나를 꺾어다오
이 몸뚱어리에 피는
불꽃을 꺾어다오
저 낭떠러지의 철쭉보다도
가마 속의 쇳물보다도
더 붉고
뜨거운
그래서 누구도 못 다스리는
이 가슴의 바람을
미칠 것같은 이 어지럼증
비틀대는 허기를
꺾어다오
꺾어다오
어다오
다오
오
!
셋. 서울수로
수로여
서울수로여
하늘까지 뻗쳤던
바닷속까지 미쳤던
그대의 바람 진분홍 바람
종로 뒷골목
강남 새 거리
어둡고 깊은 이 거리마다
번쩍이는 그대의 아미
향내나는 몸뚱어리
눈 멀고 귀 먹은 사내들
바보 바보 또 바보들
살몽둥이 나무몽둥이
쇠몽둥이 들고
정신 못 차리네
쪽을 못 쓰네
죽네 죽네
죽을 뿐이네.
넷. 사랑 또는 절망
독주로 취하는 이 봄날
아지랑이 속으로
자꾸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꽃
꽃마다 귀신이 붙어
우리 피의 불길을 틔우느니
온 하늘자락 다 사르고
바닷속까지 마르게 하니
이 마음 몸뚱어리
어이 비치지 않으랴
타지 않으랴
사람이 하는 일
뉘 막을 수 있으랴
하늘 둥둥 훨훨 날 수 밖에야.
다섯. 미로학습 안보여요죽었다살았다살았다죽었다하는춤사위가끝없이흐느적이고있어요비맞은가을 꽃의막막함이이럴까요죽은시간을넘어굴러가는빈깡통들도소리조차나지않아요펄럭이 는마술사의짧은속치마에이는바람이골목마다휩쓸어도길이안보여요당신이안보여요어 둠속에숨진부끄러움의잔해만이쓰레기처럼뒹굴고있어요사랑해요어둠을요어둠은꽃인 가요천국인가요사랑은폭력인가요혁명인가요휘청거리는도시의방황하는거리에서서아 무리외쳐보아도메아리뿐이예요안개가루가한치앞까지가려버리고아무것도아무도보이 지않아요하늘도땅도바다도산도진달래도절벽도안보여요휘황찬란한불빛이골목마다쏟 아지고있어도어둠은여전히어둠일뿐이예요봄이올까요그러면새가울까요안개속에서어 둠속에서허수아비들이새를안고있어요깨지도않은알이예요아니예요모르겠어요아무것 도모르겠어요아무것도안보여요안보여요.
|
-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