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 일탈

洪 海 里 2013. 4. 7. 15:46

 

                                                            

이석주_서정적 풍경_캔버스에 유채_130×72.8cm

 

일탈 逸脫 / 洪海里

 

1

귀 눈 등 똥

말 멱 목 발

배 볼 뺨 뼈

살 샅 손 숨

씹 이 입 좆

침 코 턱 털

피 혀 힘...

 

몸인 나,

너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린다

그것이 한평생이다.

 

2

내가 물이고

꽃이고 불이다

흙이고 바람이고 빛이다.

 

그리움 사랑 기다림 미움 사라짐 외로움 기쁨 부끄러움 슬픔 노여움과 눈물과 꿈,

옷과 밥과 집, 글과 헤어짐과 아쉬움과 만남 새로움 서글픔 그리고 어제 괴로움

술 오늘 서러움 노래 모레 두려움 춤 안타까움 놀라움 쓸쓸함

(내일은 없다)

그리고 사람과 삶, 가장 아름다운 불꽃처럼

우리말로 된 이름씨들 앞에서

한없이 하릴없이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것은

아직 내게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한 그릇의 밥이 있어서일까

일탈이다, 어차피 일탈 逸脫이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년, 우리글)에서

 

 

* 洪海里

고려대학교 졸업.

시집『投網圖』로 등단.

『花史記』,『은자의 북』등 여러 권의 시집 상재.

현재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

 

[단상]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는 각자 다릅니다. 한평생의 몸 즉 나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리는 신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부연설명 없이 간결하면서도 진지합니다.

바슐라르가 말하는 4대 원소로 이루어진 우리 몸과 그 몸을 감싸고 도는 그리움에서 쓸쓸함 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삶과 떼어놓고는 말 할 수 없는 이름씨들입니다. 이 시는 현실감 있는 서정으로 우리 삶의 질서와 원리를 아직 남아 있는 어둠으로 환기 시킵니다.<내일은 없다>고 짐짓 정체성을 일갈하지만 <한 그릇 밥>이 있어 삶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애착을 역설로 묵직하게 울려줍니다. 그것이 일탈이고, 어차피 일탈입니다.

 

-출처/ 혜일 사랑, 권정일 시인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