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양귀비
洪 海 里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기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넋을 놓는가.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널 끌어안고
만신창이 만신창이 불타고 싶어라.
- 시집『淸別』(1989)
나의 시감상
- 김세형(시인)
전 꽃도 달려와 피어 있는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전 꽃이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와 불타고 있는 심장인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진작 그걸 알았더라면 만신창이로 끌어 안고 함께 불타버렸을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저 새빨갛게 불타는 심장,
타오르는 불길을 꺼주려 내 몸을 만신창이 태풍으로 흔들어 대다간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난 죄인입니다. 꽃의 법정에 세워져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난 사랑에 무심했던 무심죄로 두 다리가 잘린 채 종신형을 선고 받고
질주하지 못 하도록 한자리에 뿌리박고 종신토록 서 있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같은 천만 송이 꽃빛들의 비난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자리에 고개 떨구고 속죄하며 서 있어야만 하는 죄인입니다.
사랑에 무심했던 죄는 천도를 어긴 자의 죄에 버금가는 죄로서
난 천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죄인 입니다.
꽃의 법정 판사님이시여!
저를 차라리 화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 불타는 양귀비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이 귀 따가운 태양빛 아래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만신창이로 불타게 해 주십시요.
중독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사랑에 불타지 않는 죄
만신창이로 만신창이로 불타 버리지 않은 죄
그 죄값을 달게 받을 수 있도록 날 화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 뜨거운 넋을 끌어안고 활활 타오르다 하얗게 재로 남게 해 주십시요.
타오르는 고통의 기쁨으로 죽을 수 있게 절 용서치 마시고
절 만신창이 花刑에 처해 주십시요.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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