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둥근잎나팔꽃

洪 海 里 2018. 12. 30. 10:14

둥근잎나팔꽃

 

洪 海 里




아침에 피는 꽃은 누가 보고 싶어 피는가
홍자색 꽃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고, 한 번,
가는 허리에 매달려 한나절을 기어오르다
어슴새벽부터 푸른 심장 뛰는 소리---,
헐떡이며 몇 백 리를 가면
너의 첫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 허나,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처럼 지는 꽃잎들
그림자만 밟아도 슬픔으로 무너질까
다가가기도 마음 겨워 눈물이 나서
너에게 가는 영혼마저 지워 버리노라면
억장 무너지는 일 어디 하나 둘이랴만
꽃 속 천리 해는 지고
타는 들길을 홀로 가는 사내
천년의 고독을 안고, 어둠 속으로,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아침에 피는 꽃, 저녁에 버리리-     

                                                                                                                                                                                     

그렇다!

저 눈앞에 환히 보이는 둥근 나팔꽃 꽃잎 속은 어디로 가는 활짝 열린 문인가?

머나먼 아득한 그곳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인가?

아니면 서정주의 「귀촉도」에서의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길인가?

곧 입술에 닿아 녹을 듯, 그대 떨리는 홍자색 붉은 입술,

그 첫 우주 열림의 떨리는 꽃잎 속을 향해 난 한 마리의 푸른 벌레처럼 기어가네.

콩알만한 푸른 심장 할딱이며, 할딱이며, 목숨줄기 같은 가는 그대의 허리 줄기,

그 애끓는 애련한 길에 매달려 지척인 듯, 지척인 듯, 힘겹게 다가가네.

그러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억장의 슬픔으로 무너지며, 무너지며,

점점 멀어져가는 길, 그 길 없는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길,

그러나 다가가기도 차마 마음 겨운 길, 가깝고도 먼 그대에게로 가는 길,

그 길은 바로 눈앞에 활짝 열린 농염한 관능의 길, 꽃길이기도 하지만 

결코 쉽게 도달 할 수 없는 아득한 구도의 길,

서역 삼만 리 실크로드 사막길,

고독하고 망막한 시인의 마음의 길이기도 하다.


아니, 관능이란 단어는 넉살좋은 아줌마들처럼 너무 징글맞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나 보는 순수 에로티즘.

그렇다! 그 순박한 시골 소년의 순수 첫사랑 미학이다, 그러나 그 순수가

순수로만 그치고 만다면 그 얼마나 나어린 소년소녀 취향의 센티멘탈일 것이냐?

그 둘 다이다.

잊혀져가는 순수 홍자색 첫사랑 수줍은 유년의 기억 속인가 하면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성숙한 여인의 농염한 홍자색 꽃잎 속이기도 하다.

유년의 첫사랑의 기억을 향한 길,

혹은 그 성숙하고 농염한 여인의 홍자색 宮 속,

그 천리 길엔 어느새 늙은 해 하나 서편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고,

천년의 고독을 안고 노을 속으로 점점 타들어 가는 홍안의 늙은 소년 하나,

그가 바로 에로티즘 미학을 求道의 미학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홍안의 노시인 홍해리 선생님이시다.

대쪽처럼 늘 꼿꼿하신 선생님의 詩心 속엔 놀랍게도 황순원 소설

‘소나기’에서 보듯 시골 소년의 수줍고도 순박한 첫사랑의 에로티즘의 서정과

작품성 뛰어난 성인 예술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농염한 에로티즘의 서정과

천년 고독의 심오한 구도자적 서정, 이 세 가지 빛깔이 이 한 편의 시에

세련된 서정적 시어로 감칠맛나게 서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빛깔이 서로 어우러져 빚어낸 색깔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홍자색이다

난 연로하신 노시인들 중에서 이렇게 순수하고 맑고 농염한 서정을

한꺼번에 가슴에 간직하고 계신 분은 아직까지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다가가기도 마음 겨워 눈물이 나서”와 같은 소년의 에로티즘 순수 서정과

“너의 첫 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의 완숙하고 농염한 탐미적 관능 서정과

“꽃 속 천리 해는 지고 타는 들길을 홀로 가는 사내”의 도저한 구도자적 서정이

눈물겹게 서로를 감싸안고 노시인의 가슴속을 흐르다

또한 얼마나 우리를 가슴을 미어지게 애련케 하는가?   


인간 본성으로서의 에로티즘 앞에서 순결하여 오히려 한없이 고독한,

그러나 농염하여 더욱 애련한, 이런 에로티즘 순결 미학은

대쪽같은 꼿꼿한 품성과 휘어지는 난의 미학이 서로 교합되지 않고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고지순의 求道의 미학의 경지이다.

세상에서 가장 꼿꼿한 것이 마침내 휘어질 때

가장 애련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자태를 보이는 법!

그런 휨의 미학적 자태는 蘭이 아니고서는, 다른 데서는

결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강내유의 미학이며, 유현의 미학이며,

애련의 미학이며, 蘭의 미학이다.

이런 蘭의 미학은 순수한 소년적 감성과

인간 존재로서의 고통스런 몸의 욕망애 대한 솔직한 탐미적 긍정과

그리고 그 긍정에 대한 노년의 완숙한 구도자적 정신에 있어서의

자기부정의 깨달음이 서로 이율배반적으로 배율배합되어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통합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만이 가능한 미학이다.

세파와 시류에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는 굳은 구도자적 황금빛 理性과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존재로서의 쉽게 져버릴 수 없는 애련한 異性 감성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던 만해 한용운의 구도자적 서정,

그리고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소년의 순수한 감성과

성숙한 여인의 농염의 서정이 이 한 편의 시에 탐미적으로 서로 뒤섞여 녹아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소녀의 넘어져 깨진 무릎팍에 흐르는 새빨간 핏물을

얼굴이 붉어진 채, 마치 꿀벌이 꽃물을 빨 듯 입술로 재빨리 빨아주곤 그러나,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으로 지는 꽃잎들” 하며 꽃물 묻은 입술로 되뇌며

비탈길로 마구 달음박질쳐 달아나는 그 마음은 한없이 부끄러운 순박한 시골

소년의 그 순수서정의 미학과,

농염한 세속적 탐미적 관능 미학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나,

“천년의 고독을 안고, 어둠 속으로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 지워지”며 와 같이 

만해 한용운의 시에서나 볼 수 있는  求道者적 버림의 애련의 미학.

즉, 순수서정으로서의 에로티즘 미학과

농염의 관능 미학과

버리고 떠남이라는 애련의 구도 미학이 빚어낸

삼위일체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지고지순의 “푸른 심장”의 푸른,

“너의 첫 입술”의 붉은,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의 하얀,

이 세 가지 색깔을 적절히 배합하여 빚어낸 색이

그토록 “마음 겨워 눈물나는” 홍자색이다.


순결(하얀),

농염(붉은),

애련의 求道(푸른)

의 절묘한 색깔의 배합이 빚어낸 미학인 것이다.

(실제로 이 세 가지 색깔을 적절히 배합해 보면 위에 보는 사진의 나팔꽃 색에 가까운 홍자색을 빚어낼 수 있다)

 게다가 나팔꽃의 꽃말까지 애착, 기쁨, 덧없는 사랑의 굴레이니,

“가는 허리에 매달려 한나절을 기어오르”는 애착

“너의 첫 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한 기쁨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으로 지는 꽃잎들”의 사랑의 굴레의 덧없음의 서정과

어찌 일치하지 아니한다 할 수 있으랴?

어찌 이 시를 대하는 마음이 눈물겹지 않으랴?

그러나 결국 할딱대는 작은 심장을 끌어안고 타는 들길로 달아나다

대나무 재처럼 하얗게 지워지고 있는 천년 고독의 가슴 아픈 실루엣 하나---.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는 자택인 우이동 洗蘭軒,

그곳에서 백여 개가 넘는 난을 애지중지 키우고 계시며 詩心을 불태우고

계시다가 이젠 그마저도 애착이라며 한두 개만 놔두고 나머지는 다 버리셨다는

백발성성 홍안 시인, 홍해리 선생님,

홍해리 선생님이 蘭이며, 蘭의 미학 그 자체이시다.

 - 김세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