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홍해리 시인의 연작시를 읽고 / 정일남(시인)

洪 海 里 2019. 1. 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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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海里 시인의 연작시를 읽고

-『치매행致梅行

 

    정 일 남(시인)


 

한심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236              

 

흘러가라, !

고여 있으면 썩는다.

 

바람아!

구멍을 만나 피리를 불어라.

 

돌멩이도 취해서

해를 배는 봄인데,

 

아내여!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홍해리 시인은 치매(癡呆) 시를 쓰면서 치매(癡呆)는 치매(致梅)라 해야 한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치매 환자를 아름다운 매화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천진난만한 꽃으로 본 것입니다. 이런 위로가 없으면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많은 간병인들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일 것입니다. 홍해리 시인은 일관되게 연작시를 써 왔습니다. 그 연작시만 모아서 치매 시집 두 권을 발행했고, 그리고도 계속 같은 주제로 치매행 236번 째 시를 쓴 것이 위의 시입니다. 독자들도 잘 아시겠지만 치매란 병은 육체적 병이 아닙니다. 병균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뇌의 신경세포에 의한 병입니다. 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걸어 다니는데 이상이 없고 말하는데 이상이 없고 듣는데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아들과 딸을 구분할 수 없으며 남편을 남편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집을 나서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게 됩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지 않습니다.

 

  홍해리 시인의 아내는 나이 먹은 노년이 아닌데, 치매로 고생합니다. 교직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명예퇴직을 하고 자식들도 다 키워 짝을 이뤄 살도록 날려 보냈습니다. 이제 노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여유가 생길만하면 악재가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홍해리 시인은 월간 문예지 <우리 >의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낮 시간에는 아내를 요양원에 보냈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근간에 병세가 심해지자 집에서 보살피고 있다 합니다.

 

  어느 봄날에 쓴 시. 물을 보고 말합니다. 머물지 말고 흘러가라고 합니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게 됩니다. 바람은 구멍을 통과할 때 피리를 불게 됩니다. 이런 이치를 왜 여기서 말하는지 우린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아내는 현재 고여 있는 물이고 소리를 내어 노래 부르지 못하는 바람으로 정지되어있는 상태로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진정 시인은 바랍니다. 아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갔다가 스스로 찾아왔으면 좋겠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갈망이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의 같은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만찬

  - 치매행致梅行 · 237

 

삶은 감자 한 알

달걀 한 개

애호박고추전 한 장

막걸리 한 병.

 

윤오월 초이레

우이동 골짜기

가물다 비 듣는 저녁녘

홀로 채우는 잔.

 

  여기 만찬은 시인 혼자만의 만찬입니다. 반찬의 가지 수가 세 가지나 됩니다. 삶은 감자와 달걀과 애호박고추전이 그것입니다. 거기에 막걸리 한 병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 만찬을 준비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만찬을 준비한 것은 이 시의 주인공 자신입니다. 이미 숙달이 되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홀로 먹는 만찬이니 수저도 하나입니다. 막걸리 한 병으로 보내는 시간. 누가 잔에 술을 부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잔에 부어 술을 마십니다. 이런 일상을 누구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깨우고 다짐해야 합니다. “내가 허물어져서는 안 된다.” 자신이 허물어지면 가정이 다 허물어진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심정으로 한 끼를 때워야 했을 겁니다. 때가 오월입니다. 녹음이 우거지는 우이동 골짜기. 온갖 기와요초가 생기를 되찾아 생명을 구가하는 때. 홀로 잔을 채우고 삶의 쓰디쓴 맛을 술로 달래는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가물다 비 듣는 저녁이 마음까지 촉촉이 적시는 듯합니다.

 

  깊고 멀다

   - 치매행致梅行 · 238

          

정은 깊어야 포근하고

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운 것은 멀리서 반짝이고

별은 멀어서 그립다.

 

그래서

사랑이다.

 

하여,

그리 깊고도 먼 것인가, 아내여!

 

 ()이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나 그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이란 것은 인간의 속성이고 마음에서 스스로 울어나는 본성이 아니겠습니까. 정은 사람됨을 말하고 인품을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시인의 말은 정이 깊으면 포근하다고 했습니다. 심연의 정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고요의 중심에 시인은 있습니다. 마치 좌불(坐佛)처럼 앉아 있습니다. 방안이 깊은 산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흔히 우리가 그립다는 것은 멀리서 반짝이는 별입니다. 하지만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은 먼 곳에 있지 않고 가까운 곁에 있습니다. 사랑이 곁에 있어도 그 당사자(아내)는 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며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환자입니다. 그러니 곁에 있어도 별 보다 더 먼 곳에 있는 것입니다. 아내여!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먼 곳입니다. 이 깊고 멀다는 거리가 실제로는 곁에 있지만, 소통불능의 현실은 아득한 곳에 있다고 보는 게 이 시의 결론입니다. 어찌 수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눈물 부자

 - 치매행致梅行 · 239


 

내 몸에 물이었구나

내 눈이 샘이었구나

 

나이 들면 눈물이 흔해진다더니

보는 것 듣는 것마다 날 울리네

 

딸을 시집보내면서 울고

친구가 먼저 떠나가 울고

 

울지 말자, 울지 말자!” 하면서도

말없이 누워 있는 사람 보며 또 우네!

 

  인간이 한 생을 살면서 겪는 일에는 여러 곡절이 있을 것입니다. 웃음꽃 피우는 일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오늘의 세대를 눈물도 없는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어느 상갓집에 가보아도 눈물을 흘리며 우는 상주를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굴건제복을 하고 문상객을 맞으면 반드시 곡()을 했습니다. 그게 망자를 보내는 예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승을 떠난 자를 위해 울고 눈물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화가 줄을 서서 눈물을 흘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여기 눈물 부자란 시를 보면 이 시의 주인공인 시인은 누워있는 환자(아내) 앞에서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말 못할 시중을 들면서 눈물 부자가 되어있는 경우를 상상하게 됩니다. 눈물이 나는 경우도 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너무 기쁜 일이 닥칠 때 눈물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식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나 상()을 탓을 때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눈물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속성으로 눈 밖으로 떨어지는 분비물을 눈물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서 흘리는 눈물. 귀하게 키운 딸을 시집보냈을 때 부모는 울게 됩니다. 친구가 먼저 이승을 떠났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화자인 시인은 아내의 불치병에 대한 경우입니다. 동반자인 아내는 누워있습니다. 시인은 스스로 다짐합니다. “울지 말자!”라고.

 

꽃과 별

- 치매행致梅行 · 240


 

꽃을 노래하지 않는 시인이 있는가

별을 노래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꽃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별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아낸 꽃을 쳐다보면서 꽃을 보지 않고

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별을 보지 않고

 

지상에 꽃이 피어야 하늘엔 별이 뜨고

내가 봐야 꽃도 피고 별도 뜨는 것이니

 

아내도 한 때는 향기로운 꽃이었고

내 어둔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들은 꽃을 노래했습니다. 별도 노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꽃의 본질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별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별을 진정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꽃의 외형만 알았을 뿐입니다. 별을 노래한 시인도 별이 되려고 했지만 별을 상상의 물체로 노래했을 뿐입니다. 어릴 때 우리가 꿈을 키웠던 별입니다. 지금 아내는 꽃을 보고도 저게 꽃인지를 모릅니다. 그 아름다움을 모릅니다. 기억하는 기능이 정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를 지키는 시인도 별을 보고 무심했을 겁니다. 지상엔 꽃이 핍니다. 그리고 하늘엔 별이 뜹니다. 이 자연의 조화를 보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삶을 만끽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대화가 가정을 꽃피웠고 시인의 행복감이었을 겁니다. 그런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지만, 그건 이제 기대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한 때 향기로운 꽃이었고 하늘에 반짝이던 별이었던 동반자.

 

  세상엔 기적이란 게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자들은 신약 개발에 연구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울산의대 창업회사인 아델은 범부처 신약개발사업단과 치매 치료항체 선도물질 개발에 대한 과제 협약식을 체결했다 합니다. 아델은 신약개발 사업단의 지원으로 치매 치료제 후보물질인 <ADEL-YO1> 항체에 대한 최적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합니다. 아델은 치료항체 뿐 아니라 이 기술을 바탕으로 별도의 지원을 통해 치료백신과 진단 키트도 개발한다고 합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정에 멀지 않아 기쁜 소식이 전해지 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 월간우리詩》201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