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개망초 추억

洪 海 里 2014. 1. 20. 16:45

개망초 잡설 - 월류재 통신 33

 





사진 (위) 어느 공동묘지에서 요즘 한창인 개망초, (아래) 혹시 달걀 후라이가 연상되나요?

N 님,

메일에 붙여 보내 주신 시를 잘 읽었습니다. 망초와 개망초에 대한 세 시인의 생각이 저에게는 별나게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수일 전에 동네 인근의 공동묘지로 산해박 꽃을 찾아갔다가 그 꽃은 보지 못하고
개망초 꽃만 실컷 보고 돌아섰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제 뇌리에서 생생한 그 흔하디흔한 들꽃 덕분에
그 세 편의 시가 한층 더 재미나게 읽혔던가 봅니다.

우선, <망초꽃>의 시인 송기원은 “누구도 보지 못한 캄캄한 나락”에서 무언가를 관조하고 있는 “너”를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그 관조의 대상이 죽음이라는 점은 그 "너“가 처해 있는 곳이 “이승과 저승이 함께 먼”
어느 경계 지대라는 데에서 암시되고 있군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늘 밤도 벌판 가득히
망초꽃 하얗게 흐드러지는데

라고 하는 마지막 두 줄에서 처음 언급되는 “망초꽃”입니다. 밤에도 하얗게 비친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 꽃은 그냥 망초라기보다 개망초를 가리키거나 적어도 망초속(屬)의 꽃들을 범칭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구절이 우리의 각별한 주목을 끄는 것은 그 꽃이 바로 죽음의 경계지대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이고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정호승은 <개망초꽃>에서 개망초꽃을 좀 더 명시적으로 죽음과 관련짓고 있군요. 살벌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영문 모르게 총살당한 사람이며 죽은 아기를 그려 나가던 시인은 마지막 두 줄에서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 만 개망초꽃

이라고 읊습니다만, 시의 끝 부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언급된 이 “피다 만 개망초꽃”이 비명에
목숨을 잃은 이들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망초나 개망초 꽃에서 위 두 시인이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만약에 망초속 꽃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면 제가 수일 전에 본 공동묘지의 개망초도 그 묘역을 위해서는
썩 잘 어울리는 식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개망초 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꽃 하나하나에서 혹은
그 군락지에서 죽음을 떠올리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인들이 망초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그 이름에서 망할 망(亡)자나 북망산천(北邙山川)의
망(邙)자를 연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망초꽃의 생김새가 아니라 그 이름 속의 “망” 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은연중에 이 꽃을 죽음과 관련지었을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이우철 교수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를 뒤져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래 “망풀”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던 망초가 실은
“亡草”이며, 구한말 개항기에 북미 지역에서 수입된 상품에 이 식물이 섞여 들어온 후 이내
우리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유래가 진실이라면 아무 죄도 없이 귀화해서 사는 망초나 개망초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한창인 개망초 꽃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그 꽃에서
청순함이나 단정함을 떠올릴지언정 결코 죽음 같은 부정적인 것을 연상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홍해리의 <개망초꽃 우억>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구절에 더 호감이 가네요.

가버린 반생이 뜬세상 뜬정이라고
아무데서나 구름처럼 피어나는
서럽고 치사스런 정분이
달걀 후라이를 부치고 있는가
지상에 뿌려진 개망초 꽃구름이여

어떻습니까? 활짝 핀 개망초 꽃을 “달걀 후라이”에 비유한 시상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지천으로 핀 개망초 꽃밭을 두고 “지상에 뿌려진 개망초 꽃구름이여”라고 읊은 것도 재미있고요.

이제 곧 그냥 망초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겠네요. 그 보잘것없는 꽃 뭉치들은 또 무엇을 떠올릴 것인지,
올해는 좀 눈여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전에 한 공동묘지에서 찍은 개망초 풍경과 접사한 개망초 꽃 사진을 붙여 보내오니
혹시 죽음이나 달걀후라이가 연상되는지 한번 살펴보시지요. 고맙습니다.

 

                                                                                      - http://www.indics.or.kr 에서 옮김.

 

개망초꽃 추억


막걸리 한잔에 가슴 따숩던
어둡고 춥던 육십년대
술 마셔 주고 안주 비우는 일로
밥벌이하던 적이 있었지
서문동 골목길의 막걸리집
인심 좋고 몸피 푸짐한 뚱띵이 주모
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고
자그맣고 음전하던 심한 사투리
경상도 계집애
좋아한다 말은 못하고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묻던
그냥 그냥 말만 해 달라더니
금빛 목걸이를 달아주고 달아난
얼굴이 하얗던 계집애
가버린 반생이 뜬세상 뜬정이라고
아무데서나 구름처럼 피어나는
서럽고 치사스런 정분이

집 나간 며느리 대신
손자들 달걀 프라이나 부치고 있는가
지상에 뿌려진 개망초 꽃구름

시월 들판에도 푸르게 피어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