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집중조명 자료

테마(시/시인)가 있는 시 : 시안詩眼 외 9편

洪 海 里 2014. 1. 24. 04:05

<테마(시/시인)가 있는 시>

 

 

시안詩眼

 

洪 海 里

 

 

한 권의 시집을 세우는 것은

시집 속 수십 편의 시가 아니라

한 편의 빼어난 시다.

 

한 편의 시를 살리는 것은,

바로,

반짝이는 시의 눈이다.

 

스스로

빛나는

시의 눈빛!

 

그 눈을 씻기 위해

시인은 새벽마다

한 대접의 정화수를 긷는다.

 

 

시핵詩核

 

앞을 보려거든 뒤로 걸어가라

뒤를 봐야 앞이 보인다

똑같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신은 같은 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뒤로 공격하고 앞으로 후퇴하라

앞도 뒤고 뒤도 앞이다

과녁[貫革]을 뒤에 세워 놓고

시위 없는 효시嚆矢를 앞으로 날려라

보지 않아도 화살은 날아간

살이 날아간 것인지

이 날아온 건지 알 것 없다

끝과 시작은 겹쳐져 있어 무겁다

무심한 바람이 발길을 흔들어 대도

물속 푸른 하늘을 새는 날고

하늘바다 높이 물고기는 헤엄친다

명중하는 표적의 울림을 위하여.

 

 

당신의 詩는 안녕하십니까?

 

매미가 버마재비 속으로 들어가고

참새가 황조롱이 속에 들어가 산다

사자가 가젤 속으로 들어가고

악어가 얼룩말 속에 들어가 죽는다

요즘 시가 병이 나도 단단히 났다

말도 못하고 듣도 보도 못한다

씹도 못할 단단한 뼈다귀를

입술에 침 바르고 맛보라 한다

뿌리가 없는, 줄기도 잎도 없는 나무

가지도 오지도 않는 곳에 핀 꽃

텅 빈 언어의 진수성찬 앞에 앉아 있는

눈썹 없는 미녀 허발하고 있다

 

시가 죽어야 시가 탄생한다

요즘 시들은 죽을 줄을 모른다

시인들이 병명을 몰라

어처구니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뜸 들이다

 

햅쌀 안쳐 뜸을 들이듯이

새옷 지으려 고운 물을 들이듯이

 

사람 만나 정들이는 일도 그러하기를.

 

흙을 다져 자기를 빚듯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듯이

 

한 편의 시를 빚는 일도 그러하기를.

 

네 모습 눈에 밟혀서

네 목소리 귀에 선해서

발이 묶여

발목 잡혀 가지 못하네,

나.

 

 

저런 시切言

 

 1

아무 일을 못해도

살아만 있어 달라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고,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홀로 두고 가지 말라고.

 

2

정금미옥精金美玉을 위하여

절·차·탁·마切磋琢摩하는,

 

시인이여

시인이여,

 

살아 있는 시를 위하여

말을 자르고 또 자르노니.

 

3

퇴고 중인 시 한 편

오늘도 도끼에 맞아,

 

잘리고 쪼개지고

박살나고 있다.

 

다 죽어서

다시 살아날 나의 詩여!

 

 

 

명창정궤明窓淨几의 시인에게

 

 

살기 위하여

잘 살기 위하여

쓰지 말고,

 

죽기 위해

잘 죽기 위해,

 

쓰고, 또

써라.

 

한 편 속의 한평생,

인생이란 한 권의 시집을

시인아!

 

 

시를 위하여

 

펄펄 끓는 욕

바가지로 퍼붓고 싶다

바가지 깨지도록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다

바가지 박박 긁으면서

싸움 한판, 피터지게 대판 하고 싶다

눈 빠지고 팔 부러지고 머리 터지도록

너랑 맞붙어 싸우고 싶다

한 대 갈기고 두 방 얻어터져

나가떨어지다

심장 멎어 정신 잃고

칵,

죽고 싶다

 

몸살이 나 몸 사리는 봄날!

 

 

 

시는 누가 쓰는가

 

 

백지를 만나면 산책을 하라

기운 솟는다고 흥분하지 마라

아무 생각 없이 가만 앉아라

행간을 찾으면서 말을 부려 쌓아라

낡은 정신이 쓰는 맛없는 시는 버려라

날것인 어휘로 쓴 날 시를 써라

 

마당이 있는 시 그늘이 있는 시 웃는 시

설레는 시 즐거운 시 눈물나는 시

달빛이 비치는 시 별이 빛나는 시

바람소리 들리는 시 꽃이 있는 시

새가 노래하는 시 물이 흐르는 시

하늘이 보이는 시 어둠이 있는 시

향기가 있는 시 맛이 있는 시

아픔과 여운이 있는 시 깊이가 있는 시

 

 

너를 처음 껴안 듯 자연을 품어라

댓바람에 맛있는 시가 나오는 법 없다

첫술에 배부르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

 

해찰하지 마라.

 

 

백지詩論

 

백 번 손이 가야 백지 한 장이 된다

한 편의 시도 그렇다

 

해산 전의 시는

백지 위의 꿈꾸는 모래알

  

백지일 때

수표는 가장 무겁다

 

긴 밤 뒤척인 아침 백지 위에

쓰여지지 않은 시가 반짝이고 있다.

 

 

가장 좋은 시

 

아직 쓰여지지 않은 시를 위하여

말을 잡는다

 

마른 논바닥에 물이 들 듯

짐승 같은 말로

파문을 짓고 싶어

 

피가 흐르는 그늘

혀와 입술이 다 젖도록

 

입을 놀리는 것은

산 말의 짐을 부리는 것

 

도축장의 칼이 놀면

귀는 말을 하지 않아

 

뜨거운 말

살아 있는 말로 쓰는,

 

가장 달콤한 시

가장 서러운 시

 

를, 위하여 고삐를 다잡는다.

 

                                     - 월간《우리詩》2014,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