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집중조명 자료

<테마가 있는 시>의 '시로 쓴 시작 노트'

洪 海 里 2014. 1. 24. 04:36

<테마가 있는 시>

 - 시로 쓴 시작 노트

 

 

시의 길, 시인의 길을 찾아서

 

 

고독한 하이에나 한 마리

순식물성인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를 내고

기분 나쁜 비웃음을 흘리는

포유류 식육목의 청소부 하이에나

밤새도록 세렝게티평원을 홀로 헤매다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다 깨곤 하는

외로운 하이에나

한다하는 턱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상상과 공상과 망상의 뼈

물고 뜯고 깨물다 그만 지쳐버린

은빛 하이에나의 처절한 울음소리

굶주린 하이에나는

꿈속에서도 썩은 고기와

사자가 먹다 버린 뼈다귀를 찾아

날이 하얗게 샐 때까지 안 가는 곳이 없다

아침해가 새빨간 혀를 내밀 때

살코기인 줄 알고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석달 열흘 굶은 하이에나 껄떡대는 소리

아작아작 씹어대는 저 단단한 이빨과 턱

새벽잠을 잊은 나의 귀여운 하이에나는

백지 평원을 겅중거리며 헤매고 있다

명상의 맛있는 살코기를 찾아서.

                  - 「고독한 하이에나」

 

 

집어등만 밝히면

고기 떼가 몰려와

그냥 집어들면 되는 줄

알았지만

밤새도록 불빛만 희롱,

희롱하다

돌아간 자리

눈먼 고기 한 마리 없는

텅 빈 백지

                   -「시작/始作/試作/詩作

 

 

아픈 배 쓸어 주고

언 마음 녹여 주던,

 

무거운 등 두드려 주고

처진 어깰 껴안아 주던,

 

거칠어도 고운

못생겨도 예쁜

어머니의 따뜻한 손 같은 詩,

 

부디, 그러하기를

나의 詩여!

                 -「나의 시」

 

전기밥솥이 알아서 해 주는 밥

며칠을 먹어도 남아 있는 밥

누렇게 변한 밥

혼자서 먹는 말라빠진 밥

이빨을 깨뜨리는 밥

그냥 얻어 먹는 밥

밥맛 없으면 입맛으로 먹는 밥

돌솥 오곡밥을 그리워하는 밥

입맛 떨어지면 밥맛으로 먹는 밥

무쇠솥에 불 때는 저녁을 그리워하는 밥

목이 메는 물만밥

자르르 윤나는 솥뚜껑을 그리워하는 밥

후후 불며 함께 먹던 밤을 그리워하는 밥

언제 먹어 봤는지도 모르는 밥

대통 속에서 잘 익은 밥을 생각하는 밥

깨지락깨지락 먹는 밥

죽은 밥

꽃잎 따 넣고 비빈 꽃밥

억지로 퍼 넣고 후르륵 넘기는 밥

먹다, 먹다 마는 밥

반찬도 꺼내지 않고 먹는 밥

맛도 모르고 먹는 밥

서러운 밥,

아직 먹지 않은

밥, 가장 맛있는 밥!

               -「맛있는 시를 위하여」

 

시를 도금하지 말라.

살아 있는 언어로 날것인 시를 써라.

시가 배가 부르면 맛이 없다.

껍질 없는 알몸의 시를 써라.

텅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야 한다.

                 -「사방탁자시四方卓子詩」

 

말이 사라지고 기호와 문자만 남앗다

말은 보이지 않고 말발굽 소리만 요란하다

정과 사랑이 없는 싸늘한 적막강산

말이 죽었다

시인은 말을 찾아야 한다

푸른 초원으로 말 떼를 인도해야 한다

시인은 장관 국회워원 판검사가 아니다

시인은 재벌 운동선수 연예인이 아니다

시인은 말의 장관 언어의 의원 언어의 재벌이고

시인은 언어의 선수 말의 예인이어야 한다

시인은 시전詩田을 일궈 말의 씨앗을 뿌리는 손이 없는 농부다

시인은 어망語網을 던져 어물語物을 잡는 배 없는 어부다

시인은 천길 암흑 속에서 언어의 금덩이를 캐는 눈먼 광부다

말을 먹고 사는 시의 시대는 올 것인가

시를 읽는 이가 보이지 않는데

시가 죽고 시집이 사라졌는데

화려한 의상,

번쩍이는 장신구,

요란한 화장이 지팡이를 끌고

줄지어 몰려들고 있다

시인 생산공장으로

시인의 죽은 나라로!

                         -「말이 죽었다

 

 

오순도순 살자고 흙벽돌 찍어 집을 짓듯이

어린것들 굶기지 않으려고 농사를 짓듯이

아픈 아이 위해 먼 길 달려가 약을 짓듯이

시집가는 딸아이를 위해 고운 옷을 짓듯이

길 떠나는 이 허기질까 봐 새벽밥을 짓듯이

기쁨에게도 슬픔에게도 넉넉히 미소 짓듯이
                              -「시작을 위하여」

 

 

-월간《우리詩》2014.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