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詩는 없다』(미간)

[스크랩] 만재도 시편 · 1 ~ 5

洪 海 里 2014. 3. 7. 09:34


* 시인의 산문

만재도에 다녀와서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잠시 빌려 살다 우주에 되돌려줄 생명의 집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내 집은 어떤가.
이렇게 낡았으니 어떻게 되돌려줄 것인가.
'집 보러 오는 이 하나 없'으니 답답하다.
내 몸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한 점 섬이다.
내 몸이 섬이다.
너도 하나의 섬이다.
너와 나 사이에 푸른 바다(Blue Ocean)가 있다.
그 바다로 향해를 해야 한다.
붉은 바다(Red Ocean)도 있다.
시는 그 바다를 향해하는 배다.
한 잎의 나뭇잎배다. 목선이다. 멍텅구리배다.
세상에 섬은 없다.
섬이란 말이 있을 뿐이다.
「다리」와「몸에 관하여」도 만재도로 인해 얻은 시편들이다.
그러니 한 데 묶는다 해도 탓할 바는 없다.
만재도라는 멋진 섬에 다녀와서 쓴 작품이 겨우 이 정도니 섬에게 미안하다.
晩才島여, 미안하다.


만재도
- 晩才島 詩篇 · 1

洪 海 里

낮이면
하늘은 어느새 속을 비워 쪽빛을 풀어내고
바다는 그를 따라 제 몸의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밤이 되자
쏟아질 듯 펼쳐져 있는 은하수
이따금 별이 하나씩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쪽빛 바다가 떨어진 별떨기를 챙기고
싱싱한 수평선 한 마리를 물고 있는
고운 해가 빠알갛게 떠올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섬과 바다가 악기가 되어 물로 켜는
파돗소리를 텅 빈 분교장이 듣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목포로 유학 보낸
젊은 엄마가
갯쑥부쟁이꽃을 바라보며 넋을 놓다가
물질 나갈 준비에 바쁜 갯마을

세살박이가 자갈 곱게 깔린 앞짝지에
혼자서 바다랑 놀고 있었다.



거북다리
- 晩才島 詩篇 · 2


고향 떠난 사람들이
가장 맛있다고 찾는다는
그곳 말로 보찰이나 거북손이라고 하는
거북다리는
거북이의 다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살과 뼈의 경계가 없는
바위를 지주 삼아 바닷물을 먹고 자란
맛이 그만인 안주감이었다
몸 속에 바다가 들어 있다
한입 물면 입안에서 바다가 터져나와
파돗소리를 냈다
석회질 손과 말랑한 살
두 손으로 잡고 살짝 꺾으면
맛있는 살, 맛살이 나오는데
맛살을 입에 물고 한순간에 잡아채야 한다
순간을 놓치면 중간에서 끊어져
맛의 절반은 잃고 만다
우리의 한때도 그렇지 않은가
한순간에 솟구쳐야지
우물쭈물하다가는 평생 꺾이고 만다
절반의 패배다
지지부진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위할 것인가
참맛은 어디서 나오는가
제때를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거북손/거북다리:
몸길이 3∼5cm의 절지동물로 몸의 위쪽 끝은 거북의 다리를 닮은 손톱모양이며 큰 각판(殼板)을 이룬다. 그 둘레에 작은 각판이 둘러서는데, 이것이 자루까지 이어진다. 자루에는 미세한 각판이 비늘모양으로 덮여 있다. 만조가 되면 석회판 사이에서 다리를 펴서 플랑크톤을 모아 잡아먹는다.
자웅동체이다. 자루 속의 살을 먹는다. 바위틈에 군생한다.



고기잡이
- 晩才島 詩篇 · 3


수평선에 걸려 있는 고깃배
던지고 있는 불빛 유혹은
낚시든 그물이든
사랑이란 황홀한 것이어서
눈멀어도 환한 세상이지만
고기 떼는 스스로 눈멀고 만다
불빛으로 유혹하지 마라
하늘에 빛나는 별로 족하다
어차피 가야 할 生이라면
한 번쯤 발광이라도 해야지 않겠느냐
흥겨운 다려소리를 위하여
내 기꺼이 제물이 되리니
고기잡이여
힘껏 당겨다오 튼튼한 그물을.



다리
- 晩才島 詩篇 · 4


한 生이 저무는 늦가을
다리를 끌며 다리를 건너는 이
지고 가는 짐이 얼마나 무거우랴

다리 아래서 주워왔다는
서럽고 분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

다리를 건너가는 이는 알까
다리 아래 넘실대는 푸른 물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허방다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두껍다리 건너다 빠진 적은 몇 번이던가

눈감으면 아득하고 눈을 뜨면 망막하다

절벽을 이은 하늘다리도 건넜고
격정과 절망의 다리,
체념과 안분의 다리도 건넜다

발자국이 끝없이 이어지고
허위허위 건너는 이승의 다리
처진 어깨 위로 저녁놀이 깔리고 있다.


몸에 관하여
- 晩才島 詩篇 · 5


씨앗 하나 빌려 지은 작은 집
조금씩 늘이고 늘려가며 살다 보면
조금씩 흔들리고 기울기 마련이지만
지붕이 헐어 물이 새고
틈새로 세월의 새가 날아가고 있다
비바람 눈보라 들이치는 문짝
구멍 난 벽마다 쥐들이 드나들고
기둥도 오래 되어 좀먹고 내려앉았다
수도관 가스관 모두 녹슬어
막히고 터지고
물이고 가스고 새는 것 천지
난방도 안 되고 냉방도 안 되는,
가구들도 색이 바래고
지붕에도 벽에도 저승꽃이 피는 집
나무 향이 은은히 번지고
쓸고 닦고 문질러 윤이 나던 때도 있었지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저절로 줄어든 크기와 높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는 무게의
바람든 빈집
집 보러 오는 이 하나 없는,

(『牛耳詩』2006. 12월호/신작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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