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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의고백, 눈부신 슬픔/ 洪海里 꽃시집『금강초롱』에서

洪 海 里 2014. 4. 5. 11:40

시인의고백, 눈부신 슬픔

 

   - 洪海里 꽃시집『금강초롱』(2013, 도서출판 움)- 

                                             김금용(시인)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
騷人墨客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
花藥 내!          

               - 「개화開花」전문

 

 

   시인은 때론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예지가 넘쳐야 하나 보다. 무심히

발에 밟히는 시린 이슬 한 방울, 햇살 한 줌까지 고루 나눠주는 우주의 섭리와

소통의 역사를 눈치채야 제대로 시인인가 보다.

   "가도 가도 사막길 같은 날"뿐인 우리 삶 속에서 사실 누가 겨울나무 빈

가지를 제대로 눈여겨 봤겠는가.

  사람보다 직감이 월등히 높은 물고기나, 허공을 차고 날아가는 새들이나

이를 알아챘다는 것인데, 이 시인도 새처럼 물고기처럼 동물처럼, 빈 가지 속

에서 꿈틀대는 꽃 몸통의 움직임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왜 꽃몸살 앓는 시인인지 알겠다.

 7,80년대 한창 난을 찾아 전국을 떠돌며 난을 찾고 난에 대한

시집까지 출판했떤 난의 시인! 그냥 붙여진 별명이 아니다.

 

  "뼈맘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 저 푸른 화약火藥 내!"

 

푸른 화약내라니!

길 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자. 느꼈어? 뼈만 남은 저 마른 가지에서 폭발

하는 냄새를! 그럼 그렇지. 내 앞가림하기 바쁜 일상의 우리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면, 첫 연에서부터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고

했으니 시인의 끼[氣]가 남다르다.

 

  홍해리 시인의 꽃몸살 시집『금강초롱』엔 색향이 넘친다. 때론 '참꽃女子'로,

'은난초'로, '상사화'로, 돌이아범의 '호박'으로, 그런가 하면 , '사금가루 다 모아

24k 황금'으로, '아름다운 남루' 산수유로, "은밀히 딱 맞는" '무화과'로, "무자

천서無字天書 경전 한 채" 지어올린 '층꽃풀탑'으로, 끊임없이 변신을 하며

시인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실체를 시인만의 '눈부신 슬픔'으로 풀어 놓았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서 감히 시 한 편만을 선택, 나보고 감상을 쓰라는 건

무리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시집 제목만 봤을 때는 감상적인 꽃시 모음인가 싶었다. 상당수 남자

시인들이 꽃을 소재로 사랑이나 여자로 대입하며 시를 쓰는 건 여자인 나로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식기를 드러내놓고 벌과 나비를 끌어

들이는 꽃은 차라리 남성이라고 볼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난 더더욱 꽃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에 반발심이 일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만큼 홍해리 시인의 이번 시 한 편 한 편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솔직하고 순수했으며

과장이 없고 진정성이 모든 편견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꽃에 대한 시선이 곧 시인의 시인정신으로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눈부신 슬픔" 때문이다.

첫사랑의 연인에 대한 지순한 심과 애정이 겹겹이 경계를 풀지 않는

꽃의 정령을 파고들어 마침내 소통하고 그들의 몸을 빌린 심령고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말 하지 마라.

 

그 말 들으면,

 

나도 아파 눈물이 진다.

 

시 (- 꽃에게」(전문)는 시인의 고백이 한 편의 시로 꽃피웠다. 절창이다.

 

                                                                   - 계간《문학과 창작》2014, 봄호 (271쪽) -



출처 : 우리시회(URISI)
글쓴이 : 김금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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