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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문학상 시터 : 제13회 시부문 본상 우이시회

洪 海 里 2014. 9. 3. 19:04

시의 선언

 

  詩는 소중한 삶의 노래며, 자연의 신비에 대한 찬미며,

또한 우리가 꿈꾸는 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표상이다.
시는 인간의 감성과 지성, 예지와 의지가 빚어낸 영롱한

언어의 결정체 - 맑은 영혼의 집이다.
  시는 우리들의 위안이며, 구원이며, 친구며, 스승이다.
보라, 시가 가는 곳에 세상이 얼마나 밝고 따스해지는가?
거친 마음은 부드럽게 순화되고, 삭막한 거리는 문득

향훈에 젖는다.
  시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끊임없는 연찬으로 시의 지평을

넓히고 그 심도를 깊이는 일은 시인들이 맡아야 할 몫이며

또한 사명이다.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에서는 오늘의 한국시를 반성하며

시의 위의를 지키고 한국시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의 길'을 설정하고 건강한 시운동을 선언한다.


첫째, 시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글이기를 지향한다.


둘째, 시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예술이기를 희구한다.


셋째, 고매한 시정신을 향수·계발토록 한다.


넷째,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멋과 운치의 시를 소중히 한다.


다섯째, 감동성 회복을 위한 다양한 모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끝으로, 이 혼탁한 시대에 맑은 시인으로 살아감을 자랑으로 삼는다.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합작시>

우이동 시인들의 술

 

술[酒]은 술(術)인가 보다

그 유혹이 시 같고

그 시가 술(術) 같더니

살아서 술 한잔 입에 대지 않던 사람도

죽어서는 제상(祭床)에 술이 오른다

 

이생진의 술은 빈 잔 속에 바다만 채우고 있는 술

임보의 술은 풍류가락 장단에 저절로 신명하는 술

홍해리의 술은 난초잎이 덩더꿍 황새춤을 추는 술

채희문의 술은 받는 잔마다 감사기도로 넘치는 술

 

술술술술 우이동은 춤을 추는 술바단가

만날 때면 한잔한잔 꿈을 꾸는 술풍륜가

한잔 술에 북이 울어 신명나는 술춤인가

시도 기도 삶도 기도 절절한 술기돈가

우리들의 우이동은 시나란가 술나란가

 

시수헌(詩壽軒) 다락방에 모인 시인들

세상에 얽힌 한(恨)들 오죽하랴만

온종일 말술에도 끄떡도 않고

투정도 주정도 다 뭉갠 채

인수봉(仁壽峰) 볼기 치며 웃고만 가네.

 

 

* 이생진·채희문·홍해리·임보의 순서로 짜 놓은 이번 합작시의 주제는 술이다.

우리<우이동 시인들>의 술이다. 우리 네 사람은 시도때도없이 만난다.

우리 모임의 좌상인 이생진 시인의 술은 병아리 오줌만큼이 정량이다. 술과 술자

리는 즐거워하면서도 자신의 주량을 고수한다. 그러나 기분이 날 때는 막걸리 한

되는 거뜬히 비우는 건강 제일주의형이다.

  채희문 시인의 술은 끝이 없다. 독일산 철제 위장을 갖고 있는지 아무리 마셔도

끄떡하지 않는다. 다음날 새벽이면 비 온 뒤의 보리밭처럼 싱싱하니 일어나 산책길

에 나선다. 참으로 놀랍고 부럽기 짝이 없다. 그는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면서 매

일 마셔대는 계속적·연속적 음주신봉형이다.

  임보 시인의 술은 노래요 춤이다. 그대로 풍류요 시이다. 북이 울고 징이 운다. 마

셔도 그만, 안마셔도 그만이면서 혼자서도 꼭 반주를 즐기는 유유자적형이다.

  홍해리는 안 마실 때는 안 마시다가도 일단 발동이 걸리면 폭음·난음하며 술을

즐기는 제멋대로형이다.

  술은 가장 정교하고 순수한 음식으로 우리 마음의 영양제요, 고독한 우리들의 가

슴에 모닥불을 피워 훈훈히 데워 주는 국이요 밥이다. 이제 우이동의 술과 술자리

는 마시는 격조·품격·스타일·주량을 따져 마시면서 생활을 지키고 몸도 가누는

분수 있는 애주가의 투명한 자리가 되어야 하리라.

  술 마신 다음날 아침의 담백한 북어국이나 된장국·콩나물국이나 얼큰한 육개장

국물로 주독을 풀어 속을 다스리고 저녁녘 술시(戌時)가 되면 다시 한잔 술로 지상

에 귀양온 신선이 되어 뽀얗게 살찐 인수봉의 볼기를 친다. 술이 먼저 우리들을 안

다. 우리들의 속을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들은 어쩔 수가 없다. 마실 수 밖에.

<海>  -<우이동시인들> 동인시집 제17집『신부여 나의 신부여』

 

 

牛耳洞

 

귀를 닦으라 한다

산은 언어요 소리요 침묵이니

귀를 닦으라 한다.

 

洗耳泉 素貴泉 목을 적시고

道詵寺 仁壽峯 오르는 고개

방울새 오리나무 구름허릿바람,

 

우이동을 떠난다면, 난

소중한 것 다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전해, 길거리를 서성거리겠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더 생각나

젯상의 촛불처럼 울고 있겠지.

 

언제나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너를

좀 더 가까이 불러놓고

네 말문 열리기를 기다리다 지칠 바에야

내가 먼저 다가서서 말을 걸어볼꺼나.

 

백운대 바람소리 마음 비우고

세이천 약숫물로 귀를 씻었다

인수봉 새벽녘의 사내맛이야

동해바다 푸르른 파도나 알리

태평양 깊은 굴속 굴헝이 알리.

 

* 이 合作詩는 사전에 아무 약속 없이 5행 이내로 써 낸 다음, 李生珍, 林 步, 채희문, 辛甲善, 洪海里 순서로 짜 이룬 것임.

<우이동 시인들> 동인지의 한 특징이기도 한 이 합작시는 25집까지 계속되었다.

5명의 동인 중 신갑선 시인은 초기에 6집까지 참여하다 그만두고 이후 4명이서 25집(1999)까지 이어오다 ,

『牛耳詩』를 만들면서 잠정적으로 쉬고 있다. 2007년 1월호부터『牛耳詩』를 『우리詩』로 개제하여 계속 발간되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에서 월간『우리詩』를 발간하고 도서출판 <움>을 운영하고 있다. - 洪海里

 - <우이동시인들> 동인시집 제1권『牛耳洞』(1987)

 

북한산

 

내가 오르고 싶은 곳은 북한산

그곳에 오르면

결국 하늘까지 가게 된다

북한산에서 하늘까지는 우리집에서

북한산까지보다 훨씬 가까운 길이니까,

 

거기 반평으로 하늘을 펼쳐놓고

한 두어 시간쯤 기다리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바위조차도 생명을 얻어 혜안이 트이고

막혔던 귀도 뚫리리.

 

마음이 가난한 자는

산의 말씀으로 살라 하고

나무의 말없음과 바위의 무거움 배우라 한다

맑은 물소리, 바람소리

배불리 먹으라 한다.

 

그리하여 나무가 되고 바위가되고

산이 되어 하늘을 이면

내게서도 물괴 바람소리가 날까

오늘도 문을 나셔면 너를 올려다보고

집에 들며 또 한번 바라보노니,

 

산이여, 사랑이여, 북한산이여,

우리들 혼을 푸는 크나큰 말씀,

등이 휘도록 山川草木 지고 가는

그대에게 아침 저녁 길을 물으며

못난 詩人 다섯 시늉하며 따라가네.

 

* 이번 합작시는 사전에 제목과 순서를 정하여 먼저 쓴 것을 이어받아

한 편의 작품으로 전개시킨 것으로 李生珍, 辛甲善, 채희문, 洪海里, 林步의

순서로 이룬 것임.

  - <우이동시인들> 제2집『牛耳洞 · 2』(동천사, 1987. 9. 15. 값 2,000원)

 

<우리시회>

  1986년 북한산 우이동 인근에 살고 있던 이생진 임보 신갑선 채희문 홍해리 시인이

동인회 <우이동시인들> 결성. 1987년 동인지《우이동》제1집을 간행하고 그 기념으로

시낭송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우이시회의 효시가 됨. 1995년 월간시지《牛耳詩》

를 발간.  2007년 1월 모임의 명칭을 우리시회로 바꾸고 잡지의 제호도《우리詩》로

개제. 2007년 4월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로 정식 인가 취득. 매달 마지막 토요일

우이시낭송회 개최. 월간시지《우리詩》발간. 매년 4월 삼각산詩花祭,

10월 삼각산단풍시제 주관. 제13회 편운문학상 본상 수상(2003).

 

- 》2014. 봄호. (Vol. 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