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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망종芒種 (대구일보 2014. 6. 9.)

洪 海 里 2014. 6. 10. 11:15

 

대구일보 (2014. 6. 9.)

 

 

망종 / 洪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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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텃논에 개구리 떼 그득하것다
울음소리 하늘까지 물기둥 솟구치것다
종달새 둥지마다 보리 익어 향긋하것다
들녘의 농부들도 눈코 뜰 새 없것다
저녁이면 은은한 등불 빛이 정답것다
서로들 곤비를 등에 지고 잠이 들것다.

                    - 시집『愛蘭』(우이동 사람들. 1998)

 

 


   지난 6일이 59회 현충일이자 절기로는 망종이었다. 현충일을 6월6일로 정한 이유는 우리민족의 세시풍습과 관련이 있다.  24절기 가운데 손이 없다는 청명과 한식에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 제사를 지내왔던 오랜 전통에 근거하여 망종인 6월6일에 추모일을 맞춘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손이 없다’의 ‘손’이란 민속신앙에서 동서남북 4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는 귀신을 뜻한다. 나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날에 그래서 ‘손 없는 날’을 택한 것이다.
  망종은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때라는 뜻이다.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를 수확하고 벼를 파종하는 데 적기임을 절기로 알렸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를 심고 밭을 갈아 콩도 심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바람에 보리가 넘어져 수확하기도 어려워진다. 특히 보리는 ‘씨 뿌릴 때는 백일, 거둘 때는 삼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시간이 촉박하다. 옛날 같으면 이맘때부터 보리수확이 끝난 논마다 보리깍대기 태우는 연기로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어찌된 심판이든 선거도 끝이 났고 이래저래 농가에서는 보리수확과 모내기가 연이어져 들녘의 농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겼다. 이때의 바쁨을 일러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도 있다. 농사일이 끊이지 않고 망중한의 겨를이 없다고 해서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 말 그대로 농번기의 최고 절정기다. 이때의 바쁨을 이문구 작가는 동시 ‘오뉴월’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 주네”
  요즘엔 보리 심는 곳이 드물어 보리타작하는 모습 보기도 어렵고, 온난화 영향 탓인지 모내기는 점차 빨라져 이미 대부분의 논에선 모를 심은 상태이지만 여전히 본격적인 모내기철의 농촌은 바쁘고 일손은 부족하다. 그 분주함에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시적인 표현까지 생겨났다. 나 같은 얼치기 촌놈이야 오래전 두어 번 생색내기 모내기지원 행사에 참가한 게 고작이지만, 거들 기회가 있다면 부지깽이라도 되고 싶다.
  무엇인가에 몸으로 빠져들 일이라도 있어야 이 찝찝한 느낌의 선거후유증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판이 ‘디비진다’고 세상을 얻는 것도 아니고, 한번 들썩했던 판때기가 원위치 되었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더욱 정신을 차려야겠다. 대통령께서 밝힌 의지대로 국가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잘 개조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저녁이면 은은한 등불 빛’으로 정답고, 늦은 밤엔 ‘서로들 곤비를 등에 지고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