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開花
洪 海 里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騷人墨客들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花藥 내!
- 시집『황금감옥』(2008) /『금강초롱』(2013)
<감 상>
시인은 때론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예지가 넘쳐야 하나 보다. 무심히
발에 밟히는 잡초에 서린 이슬 한 방울, 햇살 한 줌까지 고루 나눠주는
우주의 섭리와 소통의 역사를 눈치채야 제대로 시인인가 보다.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뿐인 우리 삶 속에서 사실 누가 겨울나무 빈
가지를 제대로 눈여겨봤겠는가. 사람보다 직감이 월등히 높은 물고기나,
허공을 차고 나가는 새들이나 이를 알아챘다는 것인데, 이 시인도 새처럼
물고기처럼, 동물처럼, 빈 가지 속에서 꿈틀대는 꽃 몸통의 움직임을 알아
챘다는 것이니, 왜 꽃몸살 앓는 시인인지 알겠다. 7,80년대 한창 난蘭을
찿아 전국을 떠돌며 난을 찾고 난에 대한 시집까지 출간했던 난의 시인!
그냥 붙여진 별명이 아니다.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花藥 내!" 푸른
화약내라니! 길 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자. 느꼈어? 뼈만 남은 저 마른
가지에서 폭발하는 냄새를! 모두 고갤 젓는다. 그럼 그렇지, 내 앞가림
하기 바쁜 일상의 우리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면, 첫 연에서부터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고 했으니 시인의 끼[氣]가
남다르다.
洪海里 시인의 꽃몸살 시집『금강초롱』엔 색향이 넘친다. 때론「참꽃
여자」로,「은난초」로,「상사화」로, '돌이아범'의「호박」으로, 그런가
하면, "사금파리 모아 24k 황금"으로 폭죽 터지는「개나리꽃」으로, "귀먹
은 산속"에선「금강초롱」으로,「아름다운 남루」의 '산수유'로, "은밀히
딱 맞는"「무화과」로, "무자천서無字天書 경전 한 채" 지어올린「층꽃풀탑」
으로, 끊임없이 변신을 하며 시인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실체를 시인만
의「눈부신 슬픔」으로 풀어놓았다. (김 금 용)
- 2015『시인들이 뽑는 좋은 시 』(문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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