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北漢山丹楓詩祭
- 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흐림
스마트폰마다 오늘의 일기예보가 다르다. 보스코가 새로 갖춘 스마트폰(큰아들이 새로 사다 주어면서 2G의 접이식 핸드폰을 수거했다. 아니면 결코 바꾸려들지 않을 테니까)의 날씨 보기는 빵기가 서울 도봉구의 것을 입력시켜 놓았고, 내 것은 정은씨 남편이 지리산 휴천면의 것을 입력시켜 놓고서 서울 도봉구를 불러 보게 만든 것인데 둘이 다르다. 지리산 예보는 서울 도봉구에 저녁 6시경에 비가 뿌린다고 했는데(실제로 그리 되었다) 서울 예보는 아침 일찍부터 비가 온단다. “기상청에 다니는 놈은 사위도 안 삼는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우리 부부가 핸드폰으로 날씨를 들여다 본 까닭은 오늘 북한산 발치에서 "삼각산단풍시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9시 미사를 우이성당에서 서둘러 마치고, 바야흐로 시단(詩壇)에 등단 중인 정옥씨를 데리고서 우이동 종점으로 걸어갔다. 도선사 오르는 길 천도교 봉황각을 조금 지나 오른편에 “초가집”이라는 식당이 있고 그 안쪽으로 조금 올라가 오붓한 공터에 행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이동 배짱이들이 마련한 가을잔치인데 “우리시진흥회”라는 단체가 주관하는 모임이어서 전국에서 배짱이들이 손에 손잡고 그리로 모여들고 있었다. 월간 “우리詩”에 투고하는 시인들이 포항에서도, 부산에서도, 청주에서도 왔다. 올라가면서 만난 남유정 시인과 주고 받던 인사: "시인이신가요?" "네." "저는 시인 아니고요." "아하, 시인 Anigo씨이시군요."
2007년도에 로마에서 돌아와 그 다음해 2008년 봄에 “삼각산시화제”에 참석하고서 오늘 다시 그 자리에 나갔으니 6년만이다. 80년대부터 “우이시낭송회”에서 다달이 만난 이생진 시인, 채희문 시인, 박희진 시인은 오늘 못 만났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여남은 명을 빼고는 거의가 우리가 처음 보는 시인들이었다. 아는 분들은 다들 현직에서 물러났고 조금은 초라해지고 조금은 더 품이 넉넉해지고 조금은 더 늙고 조금은 더 쇄약해진 모습들이었다.
11시에 대금 연주로 문을 두드리고, 박근 전 유엔대사와 “시소비자(詩消費者)”를 자처하는 보스코가 축사를 한 마디씩 하고 대자연 삼각산에 제사가 올려졌다. 홍해리 시인이 제주를 하여 초헌을 하고, 임보 시인이 독축(讀祝)을 하고, 김금용 시인이 “자연과 시의 선언”을 읽고, 오명현 시인이 “우리시진흥회”의 고유한 “시의 선언”을 읽고, 모두들 헌작을 하였다.
헌작을 하는 사람들은 돼지머리 대신에 놓여진 바나나 송이에 봉투나 현찰을 끼워 놓아 오늘의 행사비용을 분담하였다. 기념 사진을 찍고 음복을 겸하여 점심 잔치에 들어갔다. 뒤이어 시낭송과 국악의 연주와 소리꾼들의 창과 시인들의 맑디 맑은 자작시, 타인의 시 낭송으로 이 가을 북한산 단풍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잔치가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오늘 특히 반가운 일은, 빵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명예교사로 나와 만난 적 있던 김금용 시인이 화려하게 나타나 “자연과 시의 선언”을 낭독한 일이다. 30여 년 전에도 시를 쓰는 분인 줄은 알았지만 그간「광화문 쟈콥」, 「넘치는 그늘」 등의 시집을 냈고 오늘도 나에게「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2014)는 시집을 증정해 주었다.
오늘 함께 간 정옥씨도 지금이야 함양에서 시작교실을 다니며 한두 편 글을 싣지만 누가 알랴, 10년쯤 지나면 한국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어 있을지? 오늘도 그니는 용기를 내어 내로다 하는 큰 시인들 50여명 앞에서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를 낭송했다.
오늘 팜플렛에 실린 홍해리 시인의 근작시 “가을 들녘에 서서”라는 시가 오늘 그 자리에 모인 시인들의 삶과, 홍시인의 근황(치매인 아내를 돌보며 산다)과 우리들의 나이를 한데 그리고 있다.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http://donbosco.pe.kr <지라산 휴전재 일기>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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