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 치매행致梅行 · 156
洪 海 里
한때는
맑은 속살이 눈물짓게 하더니,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전혀 속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내도
양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듯
양파의 속을 일절 알 수 없습니다
아내는 양파의 여린 속살만 같아
뽀얀 진줏빛에 옅은 금빛도 띄었습니다
가멸차고 동그란 몸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껍질이 매끄러워 잡기 어렵고
어디로 구를지 몰라 예제를 헤맸습니다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는 동안
빛나는 양파는 금시에 한물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가벼운 껍질만 누렇게 남았습니다
젊었을 적엔 속살이 눈물 나게 하더니
이제는 내가 벗긴 껍질이 눈물짓게 합니다.
「양파를 까며」
- 치매행致梅行 · 130 의 전문.
이제는
마른 껍질이 가슴을 적십니다.
* 시 속에 다른 한 편의 시「양파를 까며 - 치매행 · 130」을 넣어 만든 액자시額子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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